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진강)는 김용철(49)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이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폭로한 행위를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 위반’으로 보고, 징계를 위한 내부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폭로를 바탕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을 고발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김 변호사의 행위를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로 규정,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변협 고위관계자는 “김 변호사에 대한 징계 필요성과 관련해 상임이사회 차원의 논의가 있었다”며 “김 변호사가 업무상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해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고 7일 밝혔다.
변협은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 법무팀장 시절에도 변호사 등록을 유지했던 점 등을 들어, 삼성과 김 변호사의 관계를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의뢰인과 변호사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잠정결론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할 경우, 변협은 내부윤리규정에 따라 ‘비밀유지 의무 위반’을 적용해 제명(등록취소), 정직, 과태료부과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변협은 본격적인 징계절차 착수에 앞서 김 변호사가 폭로한 내용의 사실 관계 및 동기 등부터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변협 집행부의 한 간부는 “김 변호사의 폭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고 동기도 공익에 부합할 경우는 비밀유지 의무 예외 조항에 따라 징계를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측에서도 김 변호사의 신분을 단순 고용자가 아닌 ‘사내 변호사(In-house Counsel, 기업에 고용돼 경영과 관련한 법률자문이나 외부 변호사, 로펌과의 업무협조 등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보고 대응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고용인으로 입사하긴 했지만 변호사이기 때문에 고용한 사내변호사”라며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처럼 사내변호사도 변호사인만큼 변호사로서의 의무를 지킬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에서조차 김 변호사의 행위를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위반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임직원의 일원인 법무팀장으로 고용될 것일뿐 삼성과 수임계약을 맺은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변협이 김 변호사 징계논의에 착수한 것은 이번 사건이 사내변호사 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있다는 관측이다. 변협이 변호사 1,000명시대를 맞아 기업들을 상대로 사내변호사 고용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이 사내변호사 영입을 극도로 기피할 움직임을 보이자 즉각 조치에 나섰다는 것이다.
변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 윤리장전 개정도 서두르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와 관련된 강화된 규정과 함께 사내변호사가 어떤 경우에 고용주의 범죄행위를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하는지 같은 구체적 내용들이 다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변호사가 의뢰인과의 상담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담은 ‘변호사의 비밀유지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의 입법청원도 추진할 방침이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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