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어리 맺힌 원로 정치인의 외로운 고함이었다.
7일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에 임시로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로 출마의 변을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연단에 선 그를 둘러싸고 내외신 기자 20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지만, 정작 이 전 총재의 곁에는 이흥주 특보와 이채관 수행부장 두 명이 전부였다. 그의 말대로 '명예도 자존심도 조직의 울타리도 모두 버리고 나선' 자신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으니 구차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 같았다. 대선 출마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하면서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힘이 느껴졌고, 30분간 기자회견 내내 표정에도 별반 변화가 없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에 뛰어들었던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혈혈단신으로 국민 앞에 섰다" "10년 동안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한나라당을 떠난다. 나로 인해 상처 받는 동지들이 있다면 용서를 구한다"는 대목에선 감회에 잠긴 듯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총재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낭독하는 내내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후보'라고 지칭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이 전 총재는 기자회견 후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지방 칩거 엿새만인 이날 오후 6시께 서빙고동 자택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출마 선언에 대한 소감과 관련, "보통 고뇌를 한 게 아니다"라며 "사실 입 안이 다 헐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후보와) 앞으로도 서로 좋게 잘 지낼 것이다.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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