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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압해도' 늦가을 청정 갯벌에 氣 찬맛이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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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압해도' 늦가을 청정 갯벌에 氣 찬맛이 꿈틀댄다

입력
2007.11.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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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유혹을 뒤로한 채 달려간 곳은 목포 앞바다의 신안군 압해도. 섬으로만 이뤄진 신안군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살고있는 신안의 주섬이다. 목포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신안군청도 향후 이곳으로 옮겨올 계획이다.

가을의 압해도는 흥겨움으로 요동친다. 그 꿈틀거림의 진앙은 바로 낙지. 진득한 갯벌 위로 찬바람이 불어와 낙지의 살맛이 더욱 졸깃해진 지금이 본격적인 ‘세발낙지’의 계절이다.

낙지는 가을낙지를 최고로 친다. 가장 활력이 좋고 이듬해 산란을 위해 먹이를 많이 먹어두는 시기가 지금이다. ‘가을낙지를 먹으려면 쇠젓가락이 휜다’고 할 정도다. 날이 더 추워지는 12월이 되면 낙지는 갯벌 깊은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 쉽게 만나기 힘들어진다.

목포 북항에서 차량을 싣는 철부선을 타고 채 10분도 안돼 도착한 압해도. 저 멀리 붉은 색의 압해대교 구조물이 보인다. 이 섬도 뭍이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12월 목포와 잇는 다리가 개통될 예정이다.

모터보트의 프로펠러 같기도 하고, 3개의 날이 달린 표창 같기도 한 모양의 압해도는 섬을 두른 3개의 커다란 만이 죄다 청정 갯벌이다. 이곳에서 신안에서 가장 많은 낙지가 건져올려진다. 한해 낙지로만 섬의 벼농사와 맞먹는 70억원을 벌어들인다니 ‘낙지의 섬’이라 부를 만하다.

다시 시동이 걸린 차는 송공산 자락의 청정갯벌로 향했다. 먼발치의 갯벌에는 기다란 장대가 밭을 이루고 있다. 김 양식용 그물을 걸 지주다. 오전의 말간 태양빛을 받은 갯벌은 눈이 부셨다. 뻘이 담은 방울방울의 바닷물이 작은 거울이 되어 눈이 시리도록 빛을 난반사한다. 뻘은 하늘을 담고, 구름을 담고, 태양을 담았다.

그 질척이는 곳에 바구니를 메거나 끌면서 뻘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푹푹 빠지는 갯벌을 뛰다시피 움직이며 남자는 삽으로, 여자는 호미로 뻘을 파내 낙지를 사냥한다. 작은 숨구멍만 보고 그 속에 낙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는, 낙지의 뻘과 인생을 함께 해온 낙지 박사들이다. 그 구멍을 보고 “방금 숨 쉬었다”고 말하고, 낙지의 암컷과 수컷을 구별해내는 이들이다.

송공리에 산다는 권준보(66)씨는 “하루 뻘에 나와 잘 잡으면 3,4접(낙지 1접당 20마리)은 해간다”고 했다. 고희심(57)씨는 “오염이 안된 깨끗한 이 뻘에선 낙지, 바지락, 실뱀장어 등 안나오는 게 없다”고 자랑했다.

낙지는 이렇게 낮에 뻘에서 직접 캐내 잡거나 밤에 뻘에 물이 차면 배를 타고 나가 주낙으로 걷어올린다. 밤이 되면 압해도 주위는 동해안 오징어잡이배들 마냥 ‘어화(漁火)’로 찬란하다. 낙지 주낙어선들이다.

수백 척의 보트들이 바다 위에 작은 전구로 불을 밝히며 낙지를 끌어올린다. 서렁게(칠게)를 미끼로 밤에 먹이를 먹기 위해 뻘에서 나온 낙지를 잡는 것이다.

낙지 잡는 것을 봤으니 이제 낙지를 먹을 차례. 압해면사무소 인근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낙지 본연의 살아있는 맛 그대로를 즐기기엔 통째로 먹는, 날것의 세발낙지 만한 게 없다.

나무젓가락 한쪽을 몸통에 걸어 끼우고는 나머지 젓가락으로 포개 고정시킨다. 손으로 낙지 다리를 쫙쫙 훑어서 나무젓가락에 둘둘 말아 기름장을 찍어선 한입에 밀어넣는다. ‘몬도가네’라 욕을 먹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세발낙지의 이 맛.

입 밖으로 빠져 나온 낙지다리가 뺨을 훑고, 입천장에 빨판으로 들러붙어 꿈틀대는 그 생생함이라니. 볼록해진 볼때기, 힘들여 턱관절을 움직여 입에 가득한 낙지를 꼭꼭 씹어대니 그 여린 살은 졸깃하면서 부드러웠고, 달큼했다.

압해면사무소 조광호 계장은 “이곳 갯벌은 국내 최고의 청정갯벌로 게르마늄 성분이 많다고 한다. 가을날 갯벌서 바로 잡아먹는 낙지는 이렇게 부드럽다. 외지로 나가면서 수족관서 산소를 쐰 낙지는 금세 질겨져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세발낙지의 세발은 다리가 셋이 아니라 가늘고 길어 붙여진 이름이란 건 이제 국민적인 상식. 신안과 무안의 바다에서 자란 ‘뻘낙지’에 붙는 이름이다. 이곳의 낙지 색은 희거나 빨갛지 않고 갯벌의 잿빛을 닮았다. 신안 사람들은 여수 등에서 대량으로 잡히는, 바위에 붙어사는 낙지를 ‘돌낙지’ ‘뻘건낙지’라 구분해 부른다.

신안의 뻘낙지도 배 타고 주낙으로 잡는 것보다 갯벌에서 손으로 파내 잡는 것을 대우해준다. 수매 때 1접 당 5,000원씩 더 쳐준다고.

● 풍요의 섬 압해도낙지철 끝나면 실뱀장어·숭어 제철… 소금·과일도 '일등품'

압해도는 풍요의 섬이다. 노인들만 있는 여느 농어촌과 달리 젊은이들이 많이 산다. 그만큼 벌어먹을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가을 낙지철이 끝나는 12월부터는 차가운 갯벌에서 실뱀장어 잡이가 시작된다. 실뱀장어 잡이 배 한 척 있으면 한 달에 1,000만원 수익은 기본이란다. 또 이때는 청정 갯벌에서 자란 숭어가 제철이기도 하다.

목포와 잇는 철부굼?도착하는 신장리. 지금 겉으로 보기엔 휑뎅그렁하지만 조만간 섬의 중심지로 개발될 땅이다. 섬의 맞은편 기룡리 일대에 조선단지가 들어서면 그 배후도시가 이곳에 들어선다. 새 신안군청이 들어올 자리도 이 곳이다.

신장리에서 시작된 압해도 드라이브길. 차창 밖에 보이는 풍경은 뭍의 농촌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추수가 끝난 논은 텅 비었고, 길가엔 억새가 부수수 가을빛을 부숴낸다.

압해면사무소에 다다르기 직전 오른쪽에 거대한 갯벌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란도가 지척인 갯벌 가에는 이 섬에서 가장 큰 염전인 숭의염전이 있다.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염부의 땀방울을 섞어가며 소금이 빚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염전엔 물이 자박자박 차 있다. 염전에서 만난 한 염부는 "내년 할 일을 덜기 위해 미리 간수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가을 볕에 바닷물을 조금이라도 더 농축시켜 염전의 함수창고에 보관했다가 내년 여름 좀더 일찍 소금 결정을 빚어내기 위함이다.

동서리 도창마을에서 조천마을로 넘어가는 길목, 밭들 사이에 비죽 하늘로 치솟은 돌이 하나 있다. 곳곳에 산재한 고인돌과 함께 섬의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압해도의 상징 '선돌'이다.

섬의 북동쪽 끄트머리 복룡리 일대는 과수농가가 밀집한 곳이다. 압해도 갯벌이 게르마늄 성분을 많이 함유해 낙지, 숭어 등의 맛이 유독 좋은 것처럼, 이 섬의 토질에도 그 게르마늄 성분이 많아 과실의 당도가 타 지역에 비해 높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압해배는 상당량 미국으로 직수출되고 있다. 복룡리의 끝자락에도 무안의 운남과 연결되는 다리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섬의 남서쪽 끝자락에 솟은 산의 이름은 송공산(230m).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산의 정상 부분에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던 산성의 흔적이 있다. 섬 아래의 수락마을은 일반인들이 갯벌에 직접 발을 담글 수 있는 어촌체험마을이다. 원시 어업인 독살, 낙지잡이, 바지락 캐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을 앞 갯벌에 펼쳐진 김양식장에선 김 수확이 한창이다. 요맘때 압해도 주민들은 햇김(물김)으로 마치 미역국을 끓이듯 국을 끓여 먹는다. 가을에 먹는 김국의 맛은 가을 낙지 만큼이나 부드럽고 구수하다.

압해면사무소 인근의 신안갯벌낙지영어조합에서는 압해낙지를 먹거나 사 가져갈 수 있다. 1층은 판매장, 2층은 식당이다. 낙지의 가격은 항상 '시가'다. 날마다 낙지의 가격이 크게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예년에 비해 낙지 양이 적어 올해는 조금 가격이 센 편이다. (061)271-0003

학교리의 농협하나로마트에서도 산낙지를 판다. 이곳에선 주낙이 아닌 직접 갯벌에서 파낸 '판낙지'만 취급한다.

목포 북항과 압해도를 잇는 철부선은 오전 6시20분부터 오후 6시까지 20분 간격으로 계속 이어진다.

새벽배(1회)와 야간배(3회)도 있어 충분히 하루를 섬에서 즐길 수 있다. 새벽 배는 오전 5시20분 목포를 출발하고, 야간에는 오후 8시50분, 9시50분, 10시50분에 압해도를 출발한다. 요금은 왕복 어른 1,200원, 소인 600원. 승용차는 8,500원이다. 목포에서 출발할 때는 승차권 구매 없이 탔다가 압해도에서 출발할 때 왕복요금을 한꺼번에 받는다. 압해면사무소 (061)271-0512, 신안군 문화관광과 (061)240-1241

압해도(신안)=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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