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하고 힘겨워라 이 땅의 왕비여….’
뮤지컬 배우 이태원이 명성황후의 슬픈 인생을 그린 ‘어둔 밤을 비춰다오’를 노래하기 시작하자 휠체어에 앉은 한 노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마이크도, 무대 장치도 없는 간이 공연이었지만 노인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다 결국 눈물을 보였다. 노인의 이름은 가와노 타스미(86).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중 한 명인 구니토모 시게아키의 외손자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현장으로, 100년 만에 복원된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7일 명성황후를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문화재청과 한국관광공사, 뮤지컬 <명성황후> 의 제작사 에이콤인터내셔날이 공동으로 주최한 현장기행 ‘명성황후의 숨결을 찾아서-건청궁에서 홍릉까지’다. 명성황후>
오전 11시 건청궁 가이드 투어를 시작으로 뮤지컬 <명성황후> 의 주역 이태원(명성황후), 이필승(홍계훈)이 사랑채에 해당하는 장안당에서 선보이는 아리아 2곡을 감상한 뒤 명성황후의 묘가 있는 홍릉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행사로 마무리하는 일정. 명성황후>
행사에는 가와노씨를 비롯한 일본의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6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2005년 명성황후 사죄 방문단의 일원으로 방한했던 가와노씨는 “죽기 전에 건청궁을 꼭 보고 싶다”며 노환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데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외)할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할아버지는 틀렸다”는 말만 반복하며 울먹였다. 함께 방한한 오카자키 와조(80)씨 역시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데 대해 슬프게 생각한다”면서 “일본 사람으로서 사죄의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 가이 토시오(78)씨는 평화를 염원하며 직접 조각한 나무 등불을 배우 이태원과 한국관광공사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건청궁 기행을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에 홍릉으로 옮겨 뮤지컬 원작인 <여우사냥> 의 저자 이문열씨가 미국에서 보내온 추모의 글을 낭독하고 묵념을 올렸다. 여우사냥>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번 행사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영혼을 위로하고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주최자인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뮤지컬 <명성황후> 를 처음 무대에 올린 1995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역사 현장이 방치돼 있다는 생각에 울적했는데 감회가 새롭다”면서 “광화문 복원이 마무리되면 근정전 앞에서 뮤지컬 <명성황후> 의 정식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명성황후> 명성황후>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박서강 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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