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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31> 안트베르펜 -키파와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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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31> 안트베르펜 -키파와 다이아몬드

입력
2007.11.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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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L.은 안트베르펜에서 프리랜스로 다이아몬드 거래를 하는 여자다.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다리 건너 친구로서였지만, 이내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 쪽에서 내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적의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같긴 하다. 적의를 지녔다면 내가 안트베르펜에 갈 때마다 나를 돌봐주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돌봐주었다’고 말한 것은 그녀가 정말 나를 돌봐줬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자기 집에서 재워주기도 했고(‘아는 남자’로서 말이다. 카렌과 한 방에서 잔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를 재워줄 친구를 소개해 주기도 했고, 내게 크레프(프랑스식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이기도 했고, 비실거리는 나를 단골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제 친구들과 나를 자기 차에 태워 안트베르펜 교외로 함께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길을 멀찌감치 잡아 브뤼셀이나 암스테르담까지 다녀오는 일도 있었다.

처음엔 안트베르펜이 보고 싶어서 카렌과 그의 친구들을 찾았지만, 나중엔 카렌과 그의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안트베르펜을 찾았다. 파리에 살 때 그랬다는 얘기다. 안트베르펜에 처음 가 본 건 1993년 봄 ‘유럽의 기자들’ 동료들과 함께였으나, 그 도시에 정을 들인 건 파리에 정착하고 나서다.

파리에 살 때, 나는 매년 한두 차례씩 그 도시에 들러 여러 날 머무르곤 했다. 카렌과 그의 친구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시에선,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호텔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안트베르펜은, 파리처럼, 내가 들른 도시가 아니라 사는 도시 같았다.

문득 바람이 들어 파리 북역에서 암스테르담행 열차를 탄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그 중 암스테르담까지 간 게 한 번, 브뤼셀에서 내린 게 두 번이다. 그 세 번을 빼곤 늘 안트베르펜에서 내렸다. 처음 암스테르담에 간 것도 안트베르펜에 간 것도 고속전철(Thalys)이 놓이기 전이었다.

그 땐 암스테르담까지 여섯 시간 남짓, 안트베르펜까지 네 시간 남짓 걸렸다. 고속전철이 생기고 나선 암스테르담까지 세 시간, 안트베르펜까지 두 시간이면 됐다. 고속전철은 안트베르펜 신시가지 변두리의 베르헴역에 선 뒤 중앙역을 지나쳐 그냥 네덜란드로 가버리는 게 흠이었다. 물론, 베르헴역에서 아무 국내열차에나 몰래 올라타면 안트베르펜 중앙역에 데려다주긴 했지만.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쪽의 플랑드르 지역과 프랑스어를 쓰는 남쪽의 왈로니 지역으로 대략 나뉜다. 수도 브뤼셀은 플랑드르 지역 안에 있지만,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함께 쓰인다. 동부 왈로니 독일 국경 지역에는 소규모의 독일어 공동체가 있다.

프랑스 북동부에서 발원하는 스헬데강(프랑스어로 ‘에스코’) 하구의 안트베르펜은 플랑드르의 중심 도시다. 브뤼셀이 더 큰 도시이긴 하지만, 어느 틈에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에 깊이 감염된 수도를 플랑드르 사람들은 제 도시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 거인 퇴치한 영웅 브라보의 전설 깃들어

안트베르펜 시청 앞에는 거인의 손을 잘라 내던지는 영웅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영웅의 이름은 실비우스 브라보다. 브라보라는 이름은 스헬데강 주변에 산재한 여러 곳의 ‘브라반트’라는 지명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또 브라보를 주인공으로 한 전설은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의 기원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시대 어느 즈음 스헬데강 하구에 드루온 안티곤이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 시절 스헬데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이 거인에게 비싼 통행세를 내야 했다. 통행세를 내지 않는 사람은 그에게 손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드루온 안티곤에 대한 사람들의 원망이 쌓일 무렵, 실비우스 브라보라는 로마 군인이 이 지역에 나타났다. 브라보는 드루온 안티곤을 죽인 뒤 그의 손을 잘라 스헬데강에 내던졌고, 그 뒤 이 지역에선 피 흘림이 멎었다.

이 전설의 핵심은 ‘던져진 손’이다. 그래서 ‘손’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한트’와 ‘던지다’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베르펜’이 합쳐져 한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거기서 첫 자음이 떨어져나가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안트베르펜 사람들 대부분이 믿고 있는 얘기다.

그러나 브라보 전설을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과 연결시키는 것은 그저 민간어원일 뿐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사악한’ 거인과 ‘정의로운’ 영웅을 대립시키는 이 전설이 역사적 승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색됐을 가능성이다.

이 전설에서 영웅 브라보로 대표되는 세력은 아마 외래의 정복자였을 것이고, 흉악한 거인 드루온 안티곤으로 형상화된 집단은 스헬데강 하구의 토착 세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손이 잘린 채 괴로워하고 있는 거인은 힘이 달려 정복당했다는 것말고는 다른 죄가 없는 이 곳의 원주민일지도 모른다.

한 때 유럽 최대의 무역항이었고 지금도 그 지위가 크게 추락하지 않은 이 도시의 엔도님은 안트베르펜이지만, 영어 엑소님 ‘앤트워프’와 프랑스어 엑소님 ‘앙베르’도 그 못지않게 널리 알려져 있다.

내 경우에도 앤트워프가 입에든 귀에든 가장 익숙하다. 10대 때 처음 뇌에 입력된 이 도시 이름이 안트베르펜도 앙베르도 아닌 앤트워프여서 그럴 것이다.

카렌과 그의 친구들은 제 도시를 안트베르펜 아니면 앙베르라 불렀지만, 나는 그들의 도시를 늘 앤트워프라 불렀다. 앤트워프라고 해야 내가 아는 앤트워프가 떠오르지, 안트베르펜이라고 하면 낯선 도시 같다. 지금도 계속 안트베르펜이라 부르고 있자니 영 스스럽다. 지금부터라도 이 글에선 앤트워프라고 부르려 한다.

■ 다이아몬드 절삭산업 세계1위 자랑

카렌도 다이아몬드 비즈니스에 손을 대고 있지만, 앤트워프는 다른 무엇에 앞서 다이아몬드센터다. 다이아몬드 절삭 산업의 규모가 세계 제일인 도시가 바로 앤트워프다. 중앙역과 이어지는 지하철역 이름이 ‘디아만트’(다이아몬드)고, 관련업체들이 모여 있는 중앙역 건너편의 서너 블록을 아예 다이아몬드 구역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 다이아몬드 산업을 주무르는 세력은 유대인들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돌아본 도시들 가운데 유대인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던 곳이 앤트워프다. 그들이 유대인인 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들이 키파(정통유대교도들이 쓰는 검은 모자. 야르물케라고도 한다)를 쓰고 다니며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드러내니 아는 것이지 내게 무슨 인종학적 투시안이 있겠는가.

앤트워프는 스헬데 강에 가까운 구시가지와 거기서 동쪽으로 좀 떨어진 신시가지로 나뉜다.

유대인들은 주로 신시가지에 산다. 그러니까 앤트워프 구시가와 신시가를 나누는 것은 건물이나 거리에 쌓인 시간의 두께만이 아니라, 키파를 쓴 유대인들의 존재이기도 하다. 정말 신기하게도, 구시가에선 유대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남의 구역’인 구시가지에 갈 땐 키파를 일부러 벗었는지도 모르겠다.

■ 신시가지 거리엔 키파 쓴 유대인 활보

내가 앤트워프에서 좋아하는 곳들은 대개 구시가지에 있다. 내 발걸음은, 연이어지는 미국 거리, 영국 거리, 프랑스 거리, 이탈리아 거리와 스헬데 강 사이에서 주로 머물렀다. 그 구시가의 중심이 흐로트 마르크트라 불리는 광장이다.

그 둘레에 시청과 그 유명한 성모대성당이 있다. 그 유명한? 영화와 애니메이션과 연극으로 수없이 각색된 영국 작가 위다의 소설 <플랜더스의 개> (‘플랜더스’는 ‘플랑드르’의 영어식 지명이다)가 바로 이 성당에서 슬프게 마무리되기에 한 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인공 넬로가 애견 파트라슈를 껴안고 죽는 곳이 이 성당의 루벤스 그림 아래서다.

기실, <플랜더스의 개> 가 앤트워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게 된 것은 이 작품에 반해 성모대성당과 루벤스 그림을 보러 이 도시로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들 덕분이라고 한다.

앤트워프는 루벤스의 고향이다. 태어난 곳은 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잠시 몸을 피해 있던 독일 베스트팔렌이지만, 루벤스는 열 살 때 고향 앤트워프로 돌아온 뒤 대부분의 삶을 이 도시에서 보냈다.

그가 만년에 살았던 집은 지금 ‘루벤스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이 돼 있다. 루벤스의 조수로 경력을 시작한 화가 반다이크도 앤트워프에서 태어났다.

앤트워프 기억 중 가장 가까운 것은 자정이 넘어 카렌 패거리와 함께 갔던, ‘로칼’이라는 카바레다. 화장실 벽에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초상화가 그려져 있던, 좀 뒤숭숭한 ‘업소’였다. 우리 일행 중 남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낯모르는 남자들과 어울려 춤을 췄고, 나는 얌전히 테이블에 앉아 마르가리타만 축냈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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