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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는 소림무술의 원조 아니다"/ 중국 학자 "2대 방장 조선사가 뿌리"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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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는 소림무술의 원조 아니다"/ 중국 학자 "2대 방장 조선사가 뿌리" 주장

입력
2007.11.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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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래의 소림(少林)무술은, 창시자로 알려진 달마조사(達磨祖師ㆍ?~528)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터넷신문 반다오(半島)는 6일 중국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사범대학 체육과학부 마아이민(馬愛民) 교수가 20년 동안 달마의 흔적이 남은 허난성과 허베이(河北)성 일대에서 사료 비문 유물 등을 수집, 연구한 결과 소림무술이 그와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마 교수는 88년부터 조사한 내용을 30여 만자의 보고서에 담았는데 결론은 소림무술의 원류가 안양이라는 것이다.

소림무술의 근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지만 인도 출신 승려 달마가 창안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달마는 중국 불교 선종의 개조로 한국의 선종과도 맥이 닿는다. 정설에 따르면 그는 북위(北魏)를 거쳐 숭산(嵩山)에 도착했는데, 당시의 중국 불교는 왕조와 결탁하는 대신 백성과는 유리돼 있었으며 승려들도 수행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달마는 그곳에 소림사를 창건하고 불교의 근본이 참선을 통한 깨달음이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9년 동안 토굴에서 면벽수도, 많은 불제자의 신망을 얻었다. 그런데 오랜 면벽수도로 몸에 이상이 생기자 자신과 수도승의 건강을 위해 요가를 기초로 동물의 동작을 본뜬 소림무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 교수는 달마가 무예에 뛰어난 무승(武僧)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달마는 486년 숭산에 왔다가 495년 떠났는데 그 때는 아직 소림사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당서(舊唐書)> 에 달마가 숭산 소림사에서 은거하다가 독에 중독돼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믿을 수 없으며 이후의 기록은 모두 구당서를 인용했기 때문에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마 교수의 주장이다.

마 교수는 대신 소림무술의 전수자로 조선사(稠禪師)라는 안양 출신 승려를 꼽았다. 서른 세 살 때인 512년 소림사에 와 초대 방장으로부터 불법을 배우고 2대 방장에 올랐던 인물이다. 소림사는 조선사가 오기 10여년 전에 건립됐다.

마 교수는 무예에 뛰어난 조선사가 방장을 맡은 뒤 소림 제자들에게 무술을 적극적으로 가르쳤으며, 왕조의 난립과 교체로 혼란한 시기였던 만큼 각지에서 무술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몰려와 소림사가 무술의 본거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소림사의 비즈니스 분야를 담당하는 소림사실업유한공사의 첸다량(錢大梁) 총경리도 “소림 무술의 뿌리가 안양이라는 얘기를 수년 전부터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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