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7일 대선출마를 선언하게 되면 이명박 후보 독주체제로 달려온 대선구도는 완전히 새롭게 짜여진다. 물고 물리는 다자구도가 되면서 40여일 남은 대선 향배의 유동성은 더욱 커지게 됐다.
그 동안은 너무 싱거웠다. 이 후보는 50%이상의 지지율로 고공 비행했고 범 여권 후보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이 후보가 독차지했던 ‘보수’라는 넓은 운동장에 이 전 총재라는 새로운 선수가 등장했다.
이 후보와 이 전 총재간의 일전은 거친 싸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 후보측은 사전 경고 대로 이 전 총재를 ‘제2의 이인제’ ‘차떼기 주범’이라며 몰아붙일 것이다. 이 전 총재측도 ‘이 후보는 불안하다’는 것을 출마논리로 삼은 만큼 이 후보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다. 이 운동장에서의 승자가 12월19일 대선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조건만 보면 이 후보가 유리하다. 그는 한나라당 후보라는 명분을 갖고 있고 조직도 갖고 있다. 이 전 총재는 명분이 떨어지고 무소속의 단기필마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이 후보의 빈틈을 공략했고 그게 일정부분 먹히고 있다. 경선 이후 이 후보가 소홀히 대접했던 ‘집토끼’들의 서운함을 파고 들고 있다. 조직의 약세는 국민중심당 등과의 보수연대로 보완하려 할 것이다.
14일께 BBK 주가조작 사건 핵심인물 김경준씨가 귀국하면 ‘불안한 이 후보’논란이 증폭되고, 그 결과에 따라 이 후보와 이 전 총재의 명암이 갈리게 될 전망이다.
보수 운동장의 심판은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가 어느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자가 가려질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의 출마는 명분 없다”는 식으로 일찌감치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줘 버리면 게임은 싱겁게 끝난다.
하지만 BBK 변수, 이 후보의 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의 거취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박 전 대표는 섣불리 움직이기 보다 당분간은 상황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단일화 요구도 분출할 것이다. 특히 보수 분열로 집권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 강도는 더 세질 것이다. 하지만 이 전 총재가 끝까지 갈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지금의 기세와 출마 명분만 보면 이 전 총재 머리에 단일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출마는 범 여권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이 후보 독주 체제에선 도무지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단일화 논의도 지지부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보수가 분열됐다.
정치권엔 “3대3대4로 범 여권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다. 반 부패 연대를 고리로 단일화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다. 국민의 관심이 이명박 대 이회창의 대결에 쏠리면서 범 여권은 더 왜소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의 집 싸움 구경만 하다 11월이 그냥 날아갈 판이다.
범 여권으로선 11월의 뉴스메이커가 돼야 12월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KSOI 한귀영 연구실장은 “이전 이 후보 지지율은 55%였지만 지금 이 후보와 이 전 총재 지지율의 합은 65%에 이른다는 것은 범 여권에게 불길한 사인”이라고 지적했다. 범 여권에게 이 전 총재의 출마는 기회이자 위기인 셈이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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