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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헬기 사고로 숨진 왕태기 소령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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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헬기 사고로 숨진 왕태기 소령 '최후'

입력
2007.11.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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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하지 말고 최대한 자세를 낮춰라.”

육군의 주력 헬리콥터인 UH-60 부조종사 왕태기(39ㆍ학군29기) 소령은 헬기가 지면에 곤두박질치는 순간에도 침착하게 병사들에게 안전수칙을 지키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보다 비행훈련에 열심이던 한 젊은 육군 장교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5일 오후 7시께 강원 인제군 기린면 현리 모 항공단 활주로. 합동참모본부가 주관하는 호국훈련에 참가한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소속 헬리콥터 40여대가 병사들을 수송하기 위해 550m 길이의 활주로에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날 야간 훈련은 공중강습. 항공기로 공중에서 침투하는 작전을 벌이기 위해 육군 2사단 장병 500여 명이 참가했다.

헬리콥터는 제대별로 5대씩 한꺼번에 이륙하기로 돼 있었다. 제1제대 소속 헬기 5대가 오후 7시15분께 목표지역을 향해 무사히 활주로를 벗어났다. 3분 뒤 제2제대 5대가 차례로 모두 이륙한 순간 “꽝”하는 굉음이 밤하늘을 흔들었다. 15m 상공에서 예비기인 5번기의 주 프로펠러가 병사 13명을 실은 4번기의 꼬리 프로펠러와 충돌한 것이다.

왕 소령은 4번기 부조종사로 조종석 왼편에 앉아 있었다. 꼬리 프로펠러가 망가진 헬리콥터는 중심을 잃고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콜렉티브 피치 레바’(출력을 증대시키는 조종간)를 이용해 급회전을 막는다”는 것이 기본 대처법이지만 비행 고도가 너무 낮아 충분히 통제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 소령과 주조종사 이명환(31) 준위는 활주로 옆에 대기하고 있던 수백명의 장병들을 피해 헬리콥터를 반대쪽으로 몰았다고 육군은 밝혔다. 불과 수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에 이뤄진 조건반사적 행동이었다. 이 준위는 “충돌 직후 왕 소령이 조종석을 잡고 방향 제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헬리콥터가 왼쪽으로 기울어 지면에 떨어진 탓에 왕 소령은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으나 4시간만에 숨졌다. 조종사 이 준위는 경상이었다.

이날 훈련에 참가해 먼저 이륙한 헬리콥터에서 무전으로 사고 소식을 들은 서춘도 소령은 “왕 소령은 비행시간이 동기들보다 500시간이 많을 정도로 비행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며 안타까워했다. 부인 박희숙(38)씨는 “야간 비행이라 병력 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조종복을 챙겨 입고 출근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육군은 왕 소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계급 추서와 서훈을 건의할 계획이다.

유족은 부인 박씨와 1남 1녀. 영결식은 7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도통합병원에서 항작사 부대장으로 열리며, 유해는 이날 오후 5시까지 대전현충원으로 옮겨 안장된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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