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의 바람’은 영화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그 바람은 가뜩이나 불안한 영화를 더욱 웅크리게 만든다. 새로운 돌발로 연일 반전을 쏟아내는 요즘 정치판, 이름하여 <2007 대한민국 대선전>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이 있을까. 어느 영화가, 어떤 시나리오가 이처럼 리얼하고 드라마틱할까. 또 이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결말을 전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기발할까.
영화보다 재미있는 세상에서 영화는 설 곳이 없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전쟁이 벌어져도, 아이러니컬한 은행강도가 벌어져도, 무시무시한 비밀을 품은 궁녀살인사건이 벌어져도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거 누구 각본이야. 영화라도 이렇게 만들 수는 없어”라는 한 영화제작자의 감탄이 말해주듯 그 이유가 지금의 정치판에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결과 10월 영화관객(947만명, CJ CGV 집계)은 전달에 비해 20% 가까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33%나 줄었다. 더구나 뜻하지 않았던 또 한명의 주연이 나타나 <2007 대한민국 대선전>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갈 11월에는 더 심할지도 모른다.
삼성경제연구소까지 나서서 한국영화 위기 극복책으로 한국인 체형에 맞는 영화, 패션이 가미된 창의적인 영화제작 등을 제시했지만 지금 당장 초대박 작품 <2007 대한민국 대선전>에 맞설 묘책은 없어 보인다.
#2. 이럴 때 그나마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도 정치이야기 할래”라며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 뿐이다. 극장가에 유난히 정치인이 등장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가진 영화가 잇따라 선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올 더 킹즈 맨> (3일 개봉)은 한 좌파 지도자의 부침을, 곧 개봉(8일)할 <로스트 라이언즈> 는 미군의 아프칸 파병과 군사작전에 대한 세 사람(상원의원, 기자, 교수)의 서로 다른 속내와 위선을 치밀하고 솔직하게 파헤친다. 1일 개봉한 <히어로> 도 비슷하다. 뇌물비리를 감추기 위해 증인까지 조작하는 일본 중의원의 추악성을 한 신세대 검사가 끝까지 추적해 폭로한다. 히어로> 로스트> 올>
그러나 노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에 야심찬 차기 대권주자인 상원의원 어빙 역의 열연으로 벌써 내년 아카데미상 후보로 거론되는 톰 크루즈 주연에도 불구하고, 일류(日流)스타 기무라 다쿠야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주목도가 대단하지 않다. 이 역시 훨씬 더 드라마틱한 우리 이야기, 그것도 허구가 아닌 다큐멘터리 <2007 대한민국 대선전>의 존재 때문임은 두말해 무엇하랴.
그 다큐멘터리에 연일 흥분하고, 열광하고,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등장인물이 승리하기만 하면 장차 나와 이 나라를 ‘행복’ ‘성공’으로 만들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와 달리 영화는 냉정하다. 국회의원, 차기 대권주자라는 것들은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결혼을 앞둔 한 젊은이의 죽음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언론과 짜고 거짓말을 하고 멍청한 정책으로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몰아 죽게 하고는 ‘큰 성공을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말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2007 대한민국 대선전>의 주인공들이라고 특별히 다를까. <로스트 라이언즈> 와 <히어로> 는 그러니 착각하지 말라고, 환상을 갖지 말라고 말해 준다. 아이러니다. 판타지야말로 영화의 단골무기인데. 히어로> 로스트>
문화대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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