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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42/ 이회창 '대권 삼수' 결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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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42/ 이회창 '대권 삼수' 결심까지

입력
2007.11.0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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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두 번째 대선 도전 실패 후 정계를 은퇴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결국 자신의 발언을 삼키며 대권 삼수(三修)를 선택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본격 고민한 것은 최근이지만 ‘이회창 출마설’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꾸준히 떠돌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총재는 의미 심장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경희대 특강에서 그는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ㆍ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라고 했다. ‘순신불사’의 어귀를 떠올릴 때마다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때 정치권에서는 반신반의 속에 ‘창(昌)의 정계 복귀’를 점치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올해 첫날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이 전 총재가 “현실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복귀설은 일단 가라 앉았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현실 정치에 대한 언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의 대북 정책기조를 무조건 바꾸겠다는 것은 정체성을 포기하고 국민을 배신하는 것”(3월16일), “이렇게 지독한 경선은 처음 봤다”(8월1일)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8월말부터 미묘한 기류가 이 전 총재쪽에서 감지됐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 승리 후 8월 28일 이 전 총재를 찾아 인사를 하려했으나 이 전 총재가 급체를 이유로 만남을 연기한 것이다. 이 때 당 안팎에서는 “이 전 총재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이 전 총재는 또 지난달 8일 이 후보와의 오찬에서도 이 후보의 당내 화합 의지와 대북ㆍ안보관에 대해 우려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출마설이 살을 붙여나갔다. “이 후보가 네거티브를 견디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보수층의 대안후보로 나선다”는 이른바 ‘스페어 후보론’이라는 명분까지 거론됐다. 이 후보는 이후 외부 강연 등 사실상의 정치 행보를 계속하며 보수 색채를 강화했다.

출마설이 구체화되면서 사실상의 경선 불복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지난달 29일부터 자택에서 칩거에 돌입했고, 2일부터 지방으로 내려가 5일간의 장고 끝에 결국 국민 앞에 다시 서기로 했다. ‘이회창 출마설’은 소문이 아니라 현실이 됐고, 17대 대선은 불과 한달 전에도 예상치 못한 ‘이회창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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