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솔솔 피어 오르더니 점점 매캐해진다. 불이 났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아니라고 한다. 누가 불장난을 한 것 같다, 연기가 자욱하다고 꼭 불이 났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의혹 폭로 사건 얘기다. 검찰은 김씨의 주장이 처음 보도된 이후 1주일 여를 "고발이 들어와야 수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처신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어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불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등 떠밀린 셈이지만 이제 안 나설 수도 없고, 좀 뭐하게 됐다.
● 삼성 비리 의혹 진실 공방
얼마 전 연세대 총장 부인이 편입학 청탁과 함께 2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됐을 때는 누가 와서 이른 사람 하나 없는데도 곧바로 총장 공관 압수수색까지 했던 검찰이다. 반면 부산에서 청와대 비서관이 엉뚱한 짓을 한 사건과 변양균-신정아 사건 때는 꿈지럭 꿈지럭하다가 스타일을 구겼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양심선언으로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동네 평판이 나쁜 꼬마가 "저기 불 났다!"라고 했을 때 '정말인가?'하고 사실을 알아보아 대처하느냐, '그 아이 말이라면 거짓말'이라고 묵살할 것이냐는 초등학생을 붙잡고 물어봐도 자명할 것 같다.
양심선언이냐 비리 폭로냐 하는 딱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김 변호사의 인간성이나 행태는 흥밋거리일 뿐, 문제는 그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삼성이 차명계좌를 많이 만들어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그 한 증거가 내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다. 그렇게 조성한 검은 돈으로 각계에 로비를 했다.
또 에버랜드 사건 재판 때 증인과 증언을 조작했다.'간단히 말하면 '삼성은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러왔다, 내가 그 범죄에 가담해 봐서 잘 안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검찰 간부 40명에게 주었다는 떡값 부분이다.
명단이 진짜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개를 미루고 있는 것은 검찰을 압박하려는 작전으로 보인다. 수사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한 번에 500만~2,000만 원씩 1 년에 두세 차례나 뇌물을 먹었다니 당연히 뇌물 준 쪽을 편들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을 불러일으켜 마지 못해서라도 수사를 계속하도록 만들려는 심산 같다.
이런 계산을 비난할 것은 없겠다. 사실 여부에 따라 경천동지할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사건을 대한민국 검찰이 선뜻 나서서 화끈하게 처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순진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사회적 신망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가 나서서 김씨를 거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삼성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으로서 방어 차원에서 김 변호사 개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해 그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작전을 구사하는 것을 나무랄 일도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 세간의 의문 말끔히 털어야
흥미로운 것은 김씨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삼성과 검찰은 희대의 명예훼손을 당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를 고소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금이든 와인이든 호텔 할인권이든 삼성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는 보통사람들은 연기가 난 걸 보니 틀림없이 불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오랜 취재 경험으로 볼 때 이 사건은 터진 순간부터 쉽게 덮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식성 상 떡을 안 먹는 검사들부터 엄청 열 받지 않겠는가.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어쩌면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쪽 팔려서 못 살겠다. 좀 늦었지만 깨끗이 털자'는 각오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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