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스위스의 경계 보덴제 호수는 헤르만 헤세가 소설 <데미안> 을 썼던 곳인데, 스위스쪽 양지바른 언덕이 마메른 마을이다. 데미안>
'숨겨진 지상낙원'으로 경관을 자랑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초의 수목장림(樹木葬林)이 조성된 곳으로 더 유명하다. 주민 우엘리 자우터(66)씨가 1999년 뒷산을 '프리트 발트(Fried-Waldㆍ평화의 숲)'로 명명하여 스위스와 EU의 특허를 받았다.
그곳의 '평화로움'을 잊지 못한 영국인 친구가 1993년 죽음을 맞아 "당신 마을에서 함께 지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 계기였다. 그의 영혼을 위해 고안한 것이 수목장이었다.
■수목장이 일반화한 나라는 스위스와 독일이다. 산악국가인 스위스엔 2~3㏊ 규모로 60여 곳 조성돼 있고, 산이 많은 독일 남부지역에도 30곳 정도 지정돼 있다.
망자의 영혼이 쉬게 될 '영생목'은 생전에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나, 묘목을 지정해 함께 살아가다 자신의 영생목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둥치 가슴높이에 하얀 페인트로 5㎝ 정도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것이 다른 나무들과의 차이다.
사후엔 그 동그라미 위쪽에 '○○할머니 나무' '△△씨 나무' 등의 인식표가 붙는 것이 전부다. '평화'를 방해하는 일체의 시설과 행위가 금지된다.
■엊그제 끝난 국정감사에서 수목장 난립으로 산림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5월에 국회를 통과한 '장사(葬事)등에관한법률(대안)'은 수목장을 기존의 장례 개념에 포함시키고 있다.
내년 5월말부터 시행되면 그 동안 장지에서 행해지던 각종 장례절차가 고스란히 숲속에서 이뤄질 것이다. 국유림 등 국유지에 수목장림을 조성할 경우엔 명칭ㆍ위치ㆍ면적 등에 법령의 규제를 받지만, 개인이 사유지에 조성하는 경우에 대한 세부규정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벌써부터 선점효과와 기득권을 노린 '유사 수목장림'이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목장이 첫 선을 보인 것은 2004년 9월 8일. 경기 양평군 고려대 농업연습림 참나무 아래 고 김장수 교수의 유골이 묻혔다.
봉분이나 비석은 일체 없었고,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명패만 걸렸다. 50년생 참나무는 고인이 임학과를 창설한 이후 30여년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항상 가꾸고 아끼던 나무였다고 한다.
스위스 자우터씨의 '평화의 숲'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이와 달리, 국정감사를 계기로 실태가 알려진 국내의 몇몇 수목장림은 이름만 그럴 듯할 뿐, '경관 좋은 숲속, 값비싼 나무 사이의 공동묘지'에 불과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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