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래부 칼럼] 이 풍진 대선 앞에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래부 칼럼] 이 풍진 대선 앞에서

입력
2007.11.06 00:03
0 0

대통령 선거일이 저만큼 다가왔어도 국민은 냉담하다. 사회적 관심도 열정도 찾기 힘들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쟁점은 수면 아래 깊이 잠들어 있다. 기성 세대의 권력 다툼만 혼란스러울 뿐, 젊은 세대는 아예 침묵하고 있다.

정치과잉의 사회가 모든 정치적 주제를 소비해 버리고, 정치적 조로현상을 맞고 있는가 보다. 정치과잉도 반갑지 않지만 정치적 냉소주의와 환멸, 무관심 또한 정상은 아니다. 벌써부터 투표율이 걱정된다.

● 기성세대 다툼만 혼란스러워

대선에 대한 1차적 무관심은 초반부터 지지도에서 차이가 나 대중의 흥미를 앗아간 탓일 것 같다. 이명박씨 지지도가 너무 앞선 바람에 선거의 긴장이 증발한 것이다. 후보의 도덕적 불감증도 국민을 무감각ㆍ무신경하게 만들고 있다. 후보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의혹이나 기회주의적 배신을 묻히고 있다.

고결한 도덕과 인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적으로 흠이 없는 후보가 거의 없다. 도덕성이 주요 기준이 되던 시대는 지나간 것인가 하는 소회로 씁쓸하다. 참신성과 도덕성을 찾기 어려운데, 유권자들이 흥분하고 열정을 보이겠는가.

대선 3수라는 시대착오적 현상도 환멸감을 키우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씨와 민주당 이인제씨가 세 번째 나서고 있고, 한나라당의 이회창씨도 탈당을 한 후 도전할 채비를 하고 있다. 대선 3수의 전례가 되는 10년 전 김대중씨의 당선은 '3김 시대'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나름대로의 필연성도 있었다.

이회창씨의 긴 저울질이야말로 기회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주요 후보 중 세 사람이 3수거나 그럴 예정이라는 진부함이 국민으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니, 이회창씨의 출마 여부는 장안의 화제가 되어 있다. 초미의 관심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화제들은 정치를 공허한 스캔들처럼 만들뿐, 진지하고 창조적인 행위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한낱 가십이 진지한 정책 선거의 싹을 짓누르고 있다.

이번 대선은 많은 대학교수와 언론인이 본직을 팽개치고 캠프에 뛰어든, 또 하나의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더기 대선 3수와 지식인 계층의 대거 참여로도, 이번 선거가 지닌 중대한 결함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시대정신의 부재, 명분 실종이라는 결함이다. 동시대인에 공통되는 정신적 태도, 가치적 공감을 가리키는 시대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으로 함축될 수 있는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이 우리의 시대정신을 가리키기라도 하는 양 자주 인용되고 있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지지도가 부시 후보에게 형편 없이 밀리던 클린턴을 기사회생시켜 주었다는 주술에 가까운 문구다.

그러나 이 말이 승리를 획득하게 해준 결정적 대선구호는 되었을지언정,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안정과 발전은 어느 시대에나 깔려 있는 대중적 욕구나 기본적 욕망일 뿐, '정신'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뜻밖에 어느 인터넷에 떠 있는 문답에서 간결하면서도 공감 가는 답을 발견한다. 물음;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 뭐예요?" 답; "제 생각엔,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의 글이 아니라 2004년 1월에 주고받은 문답이다.

남북통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 대열'이란 말이 함축하는 대로 합리적ㆍ이성적 사유와 쾌적한 삶이 우리의 당위와 지향점이 돼야 할 것이다.

● 지도자는 민족 이상 제시해야

그러나 각 당의 뚜렷하지 않은 대선 명분이 시대정신까지 가려 보이지 않게 만든다. 후보들이 하는 일은 고작 '경제는 1류, 정치는 3류'라는 말의 타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제라도 선거에 임하는 명분과 정책을 반듯하게 세우고 국민에게 정성껏 호소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큰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면, 국민은 빈곤하고 피곤하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