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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우는 在日 북송 탈북자/日 사회선 "北 출신" 혐오…조총련선 "배신자" 버림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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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우는 在日 북송 탈북자/日 사회선 "北 출신" 혐오…조총련선 "배신자" 버림받아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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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사는 북송 탈북자들은 스스로를 “버림받은 몸”이라고 자조한다. 일본 사회의 냉대와 조총련의 적대적인 눈초리에 둘러싸여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은 설상가상 일본에 남았던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외면받으면서 고립무원의 삶을 살고 있다.

북송 탈북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안부다. 2003년 귀국한 북송 일본인처 A씨는 “혼자서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저쪽(북한)의 아이들 생각만 난다”고 울먹였다.

북송 탈북자인 B씨는 “북한에 있는 아이 걱정에 날밤을 세우는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들을 돕고 있는 민단의 탈북자지원센터 관계자는 “탈북자들은 일본에 오자마자 북한의 가족에게 전화하고, 가지고 있는 돈도 북에 송금한다”고 말했다. 역으로 북한의 자식들이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 돌아오라”고 호소할 때는 엄청난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탈북자지원센터 관계자는 북한측은 이런 약점을 이용해 탈북자의 귀환을 유도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탈북자가 북한에서 걸려온 자식들과 통화하면서 ‘옆에 누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응’이라고 대답이 돌아온다”며 “조총련 등을 통한 공작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탈북자 2명이 실제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사례도 있다.

북송된지 44년만인 2003년 1월 귀국했다가 2005년 4월 북한에 돌아간 히라시마 후데코(平島筆子)씨가 그 중 한사람이다. 북한에 돌아간 탈북자와 가족들은 같은 직장에 배속돼 사실상 감금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사회의 싸늘한 시선, 사회에 대한 부적응도 탈북자들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이다. 2000년 일본으로 돌아온 동포 C씨는 “40년간의 공백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서글프다”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정말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북한에서 태어난 자녀, 손자들의 탈북이 늘어나면서 어려움은 가중된다. 북송 일본인처 D씨는 “(함께 탈북한) 아들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는데, ‘무국적’이라고 적힌 외국인등록증을 보여주자 ‘밀입국이냐’고 물어와 아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탈북자의 상당수는 심리적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탈북센터 관계자는 “탈북자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과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독특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상황이 어려워질 것 같다”며 “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2003년 발족한 탈북자지원센터는 일본의 관문인 나리타(成田) 공항에 첫발을 내디딘 북송 탈북자들의 일본 사회 적응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탈북자가 입국할 경우 지원센터에 미리 연락해 이들을 인솔토록 하고 있다.

공항 입국장 로비를 빠져나온 탈북자들은 지원센터의 봉고차에 올라타면서 새로운 불안감으로 얼굴이 굳는다.

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이들을 도쿄(東京) 아자부(麻布)의 민단중앙본부로 데려가 안심시키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자유세계로 잘 돌아오셨습니다”라는 환영사와 함께 일정액의 정착금과 임시숙소 등을 제공하지만 지원센터나 탈북자들이나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표정을 밝지 않다.

탈북자지원센터를 이끌고 있는 여건이(呂健二) 민단 부단장은 “일본 정부와 조총련이 외면하는 북송 탈북자들을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우리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 어느 재일동포 북송탈북자의 수기

70년대 북송됐다 2003년 일본에 돌아온 재일동포 김영미(40대ㆍ여ㆍ가명)씨는 북한을 탈출했다 강제송환되고 다시 탈출하는 과정의 참혹상을 민단의 탈북지원센터에서 증언했다. 다음은 그 내용 요약이다.

2000년6월30일 새벽 3시 다른 여성 3명과 함께 은신해 있던 중국 K성의 한 가옥에 공안원들이 들이닥쳤다. 공포에 질려 북한에 송환되지 않게만 해달라고 울며 애원했지만 S간수소(감옥)로 끌려갔다.

감금된 지 40일이 된 7월13일, 우리 4명은 장대비 속에서 차에 태워져 중국 국경 마을로 향했다. 틈을 봐서 달아날까도 했지만 너무나 위험한 모험이었고, 심신이 기진맥진해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들이 도착한 곳은 중국과 북한 국경의 경비대 구치소였다. 며칠 후 우리를 포함해 30여명은 수갑이 채워진 채로 마이크로버스에 태워졌다. 버스는 10분 정도 달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가르는 다리를 건넜다.

북한의 보위부 지도원이 나타나서 우리들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후 2사람씩 밧줄로 묶어서 트럭에 싣고 보위부로 끌고 갔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엄중한 짐 검사를 받은 후 작은 방에 14~15명이 함께 수용됐다. 밀가루에 옥수수 가루와 껍질을 섞어 풀처럼 만든 죽이 하루 세번 식사로 나왔다. 다행히 초범인 때문인지 소문처럼 잔혹하게 고문받는 일은 없었다.

15일째 되던 날 간수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다시 끌려간 지역에서의 1개월의 심문은 한층 괴로웠다. 어두컴컴한 독방에 하루종일 앉은 자세로 꿈쩍할 수 없었다. 말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채로 그저 앉아 있어야 하는 생활은 상상 이상의 괴로움이었다.

밤에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밤 10시면 취침해야 하는데 어둡고 습한 방에는 벌레가 득실거려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북한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회한으로 벽에 머리를 들이박기도 했다.

34일이 흐른 어느 날, 나는 갑작스럽게 석방됐다. 사회로 복귀해 6개월을 지냈지만 그 곳에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었다. 또다시 국경을 넘었다. 중국에서의 고단한 도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 다시 붙잡혀 북송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이를 악물고 살아 남겠다고 결심했다.

김철훈특파원

■ 북송에 '결과적 책임' 있는 日 정부 나몰라라

일본으로 돌아오는 북송 탈북자는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정착을 돕는 사회적 지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북송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은 민단의 탈북자지원센터(대표 여건이 민단 부단장)가 주축이 된 민간단체가 전담하고 있다. 북송 일본인처를 제외하고는 탈북자를 원칙적으로 ‘무국적자’(북한국적자)로 규정하는 일본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용하지만 더 이상의 지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3년 6월 발족한 탈북자지원센터는 그나마 정부를 대신해 나름대로 의미있는 활동을 펼쳐왔다. 전국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탈북자들의 생계를 돕는 등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완충역할을 해 왔다.

북송 탈북자 한사람당 10만엔의 정착금을 지급하고, 임시숙소를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 일본어 교육과 취업알선, 공공기관에서의 각종 수속, 의료 알선ㆍ지원, 사회생활 적응지도 등 탈북자들이 일본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탈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의 활동도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직장을 갖지 못한 탈북자들이 전체의 60%를 넘어서면서 탈북자 문제는 동포사회는 물론, 일본 전체의 사회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생계 문제 등으로 좌절하면서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탈북자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며 “이는 일본의 사회문제인 동시에 한일관계에 또 다른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포사회는 탈북자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냉대와 압력이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또 다른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일본 정부가 북송동포에 대한 ‘결과적 책임자’로서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과 함께 북송사업을 추진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일각에서도 자성과 인식전환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카나카 히데노리(坂中英德) 전 도쿄(東京)입국관리국장은 “탈북자가 늘어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지원 등을 일본 정부가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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