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표(53)국세청장이 정상곤(53ㆍ구속)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서 받은 돈의 성격을 국세청의 관행인 ‘업무협조비’라고 해명함에 따라 ‘6,000만원 상납 의혹’수사가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조사결과에 따라 전 청장의 신분은 피내사자에서 (피의자로)바뀔 수 있다”고 강한 수사 의지를 밝혀 세정(稅政)의 최고책임자가 사법처리되는 초유의 사태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
▲ 결백 주장하는 전 청장
전 청장은 지방청장이 관행적으로 본청장(국세청장)의 부족한 업무추진비(판공비)를 보조해주기 위해 건네는 업무협조비를 받은 것밖에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지방청에서 예산을 절약해 ‘십시일반’으로 모아 절대액수가 부족한 본청장의 판공비를 보조해 주는 것은 오랜 관행이라는 것이다.
지방청장을 지낸 전직 국세청 고위 관계자도 “1만8,000여 세무공무원을 거느린 국세청장의 판공비는 액수면에서 없는거나 마찬가지”라며 “지방청장들이 자신의 판공비를 아끼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모아 본청장이나 본청의 예산 실무 책임자에게 전달하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정씨의 진술과 전 청장의 개입 혐의가 속속 드러나는 데도 청와대가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며 사실상 전 청장 편을 들어 준 것도 전 청장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부의 핵심 고위 인사는 “전 청장이 현직을 유지한 채 소환 조사에 임하겠다며 강하게 결백을 주장하는 데다 업무협조비에 대한 전 청장의 해명에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대검 수뇌부가 부산지검 수사팀과 달리 신중한 입장을 취했던 것도 전 청장의 이런 해명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이 소환 조사를 주장할 당시 대검에서는 전 청장이 완강히 부인하는 상태에서 정씨마저 진술을 번복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무협조비가 전액 예산 범위에서 조달된 것인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전직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국세청의 상납 구조는 지방청장이 본청장에게 올리고 지방청장은 관내 세무서장의 협조를 받는 연쇄 구조”라며 “예산을 초과해 ‘인사’를 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 검찰, 사법처리 자신감
그러나 부산지검 수사팀은 사법처리를 자신하고 있다. 업무협조비의 적법성이 확인되지 않은데다 정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을 갖춘 점에 비춰볼 때 전 청장이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전 청장 부부와 자녀, 친인척 등 16, 17명의 금융계좌를 추적ㆍ분석해 일부 의심스런 흔적까지 찾아낸 것으로 알려져 사법처리는 ‘시간 문제’라는 분위기다.
검찰은 특히 전 청장이 이병대(55) 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통해 정씨를 회유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사법처리를 확신하고 있다.
이 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씨가 구속된 직후 전 청장으로부터 “전임 부산청장이 구속됐는데 도리상 한 번 면회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8, 9월 2차례 검찰 조사실에서 정씨를 만나 “‘남자답게 가슴에 묻고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를 사실상의 수사 방해 및 증거 인멸 시도라고 보고, ‘구속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사유’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김정곤기자 jkkim@hk.co.kr부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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