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공론화하지 못하던 범여권 후보 단일화 논의에 서서히 탄력이 붙고 있다. 하지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가 가시권에 접어든 뒤 지지율이 동반하락한 데 따른 수세적 대응의 성격이 짙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단일화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최근 들어 범여권 후보들은 저마다 단일화에 대한 의중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일 “개인 간 후보 단일화보다는 정책과 노선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통합 및 연대의 가치가 더 크다”고 말했다. 시점도 후보등록이 시작되는 25일 전으로 못박았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정 후보에게 개혁정권 수립을 위한 토론을 연일 제안하고 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단일화 가능성은 없지만 연정은 가능하다”고 했다. 다소 엇나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각자 파이부터 키우자던 입장에선 분명 달라진 모습들이다. 저마다 이 전 총재의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돌파구 찾기에 나선 것이다.
세 후보의 고민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정 후보는 대선이 ‘이명박 대 이회창’의 양자구도로 흘러가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후보 단일화든 세력 통합이든 정체된 범여권의 지형을 흔들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이다. 한 측근의원은 “사실상 권력과 지분을 나눠갖자고 제안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적 열망이나 예상되는 파괴력이 크지 않은 후보 단일화 정도로는 지금의 난관을 타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 후보와 문 후보는 당장 유의미한 대선후보로서의 입지 자체가 흔들리면서 정 후보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나섰다. 범여권 단일대오를 위해선 권력 분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엔 후보 단일화가 중심이 되면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이 신당에 흡수되면서 독자적인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 속에서 내년 총선까지를 내다보고 있는 셈이다.
일단 범여권 단일화의 무게중심은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 사이의 단일화와 달리 권력 분점 쪽에 맞춰졌다. 일차적인 문제는 지지율과 당세의 현격한 차이를 접어둔 채 정 후보가 파격적인 양보에 나서느냐다. 또 정체성이 사뭇 다른 이 후보와 문 후보까지 포괄하는 정책연합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현재로선 신당 내부의 복잡한 정파 구조로 볼 때 권력 분점을 상정한 단일화 논의에 탄력이 붙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중론이다. 국민적 명분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 후보와 문 후보가 서로를 연대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본질적인 이유는 범여권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반면 세 후보 모두가 자칫 군소후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 만큼 후보 단일화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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