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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투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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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투야의 결혼'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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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그곳에 뿌리 내린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이 단순한 진리 앞에,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따위의 유물론적 관념은 공허하다. 척박한 땅에 뿌리 박은 삶의 표정은 거칫하다. 그러나 그 무표정한 메마름 속에도, 생의 근원적 슬픔에서 발원하는 강은 어김없이 흐른다.

1일 개봉한 <투야의 결혼> (감독 왕취엔안)은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사막이 배경이다. 마른 가시를 품은 관목 같은 사람들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따라 양을 치며 산다. 모래바람에 휩싸여, 멀리서 본 그 모습은 흡사 구르는 건초더미처럼 물기가 없다. 허나 한 걸음 다가서는 순간, 온몸으로 생을 감당해 내는 인간의 모습에 울컥 목에 뜨거운 것이 고인다.

투야(위난)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어머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지아비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다. 그러나 거친 사막은 그녀에게 평온한 삶을 허락지 않는다. 남편은 굳은 땅에 우물을 파다가 불구가 됐고, 그녀 또한 과도한 노동으로 허리를 못 쓰게 될 지경이다.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 세상은 그녀에게, 자기연민에 빠질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투야는 남편과 이혼한다. 그리고 자신과 아이 둘, 전 남편을 부양해 줄 남자를 찾는다. 그녀의 결혼 조건은 오직 한 가지, 전 남편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오랜 세월 그녀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조건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새 남자와의 첫날밤, 전 남편은 투야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팔목을 긋는다. 턱 근육이 없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투야가 유일하게 폭발하는 순간이다. “죽는 게 쉬운 줄 알아!” 전 남편을 향해 절규하는 그녀의 눈동자에, 생의 둔중한 비극성이 파르르 몸을 떤다.

옛집의 곤궁함으로 돌아온 투야는 다시 무거운 물동이를 인다. 전 남편은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그녀는 낙타 같은 삶에 조용히 자신을 포갠다. 그러나 끝 모를 절망의 바닥에서, 삶은 신비로운 변화를 시작한다. 그녀 곁을 위성처럼 맴돌던 이웃남자 썬거가 그녀를 위해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지지리 칠칠치 못한 남자였기에 처음엔 눈길도 주지 않지만,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에 그녀도 점점 끌리기 시작한다.

겨울이 가고 다시 봄, 투야는 썬거와 결혼식을 올린다. 어른들이 자리한 상석에는 전 남편도 성장을 하고 앉아 있다. 전 남편에게 술을 올리는 투야의 얼굴에 억만 가지 감정이 찰나에 교차한다. 죽은 나무의 우듬지 같던 전 남편의 몸에서, 둑이 터지듯 울음이 쏟아진다. 음색이 가파른 몽골의 민요가, 이 처연한 풍경을 감싸고 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몽골의 땅과 닮았다. 몽골의 초원은 이미 대부분 사막이다. 그 모래의 입자는 화장분처럼 곱다. 그 위에 솟은 나뭇가지는 뿌리가 있을 것 같지 않게 마르고 연약하다. 하지만 그 모래를 20~30㎝ 파 내려가면, 거기 손목보다 굵은 뿌리가 어김없이 곧추 뻗어 있다. 그 억센 뿌리는 습기를 머금은 흙을 매섭게 쥐고 있다. 햇빛과 바람에 그을린 투야의 얼굴에, 그 처연한 생의 의지가 감춰져 있다. 뻑뻑한 모래먼지를 씹는 듯 한 영상 속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는 듯한 청량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극의 사실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은 투야역을 제외하곤 모두 몽골 현지의 유목민들에게 배역을 맡겼다. 여배우 위난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 3개월 동안 현지에서 생활하며 내몽골 여인의 모습을 체화하려 애를 썼다. 아마추어리즘의 생동감과 주연 배우의 헌신이 만나면서, 영화는 핍진한 리얼리티를 얻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이 영화에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여했다. 12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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