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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산업자본, 대안과 대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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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산업자본, 대안과 대항마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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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산업의 분리문제에 보수와 진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넌센스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주장한다고 해서 금산분리 완화가 '보수우파의 가치'라고 규정 지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공약이라고 해서 금산분리 고수가 '진보(중도)좌파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국이 그렇다. 금산분리가 가장 엄격하게 작동하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미국 금융자본주의를 좌파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월스트리트야말로 보수성이 왕성하게 넘쳐 나는 곳이다.

유럽 역시 좌ㆍ우파중 누가 집권하든, 금산분리 기조가 뒤바뀐 예는 별로 없다. 산업자본에게 은행소유를 허용할 것인가 여부는 기본적으로 이념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금산분리를 규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어색하다. 재계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대명제 아래, 모든 기업활동 제한조치를 같은 '규제 바구니' 안에 쓸어넣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이나 순환출자규제, 심지어 인ㆍ허가조치까지도 금산분리와 한 묶음의 덩어리규제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산분리는 그런 '불편한' 규제가 아니다. 투자하고 싶어도 못하게 하는 출자총액제한이나 공장을 짓고 싶어도 제때 못 짓는 복잡한 인ㆍ허가 절차와는 성격부터 다르다. 풀어달라고는 하지만, 막상 은행을 하겠다는 기업도 없다. 금산분리 완화논쟁이 공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념도 행정규제도 아니라면, 판단포인트는 국민경제 안정과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이다. 금산분리가 그 장애물이라면 당장 철폐되어야 한다. 하지만 금산융합이 금산분리보다 훨씬 행복하고 건강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선 보장이 없다.

산업자본이 외국자본에 대한 '대항마'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발전에 정작 필요한 것은 당장의 '대항마'가 아니라 '대안'이다. 과연 산업자본이 한국금융의 미래를 담보할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금융의 장래를 산업의 손에 맡기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금융자본을 키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역차별 논란도 론스타 같은 외국자본에 대해 감독당국이 금융자본이냐, 산업자본이냐를 똑바로 판단한다면 자연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들도 금산분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흘러왔다. 자의든 타의든 LG그룹은 금융에서 완전히 손을 땠고, SK그룹 역시 결별수순으로 가고 있다. 제조업과 금융업을 두루 섭렵했던 한 재계 고위인사는 "위험을 감수하는(risk-taking)하는 산업과 위험을 관리하는(risk-management) 금융은 기본논리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금산분리가 불변의 철칙은 아니다. 나라마다 시행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 차이는 역사적인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선거공약으로 탄생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금산분리도 역사적으로 봐야 한다. 금융과 산업이 잘못된 만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혹독하게 경험한 바 있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10년만에 투명해졌으면 얼마나 투명해졌고, 감독수준이 높아졌으면 또 얼마나 높아졌을까. 금산분리가 성급해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차피 공약이 된 이상, 치열하게 논쟁을 했으면 한다. 하지만 금산분리는 이념도 아니고 규제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릴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이성철 경제산업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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