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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스캔들 정치, 스캔들 경제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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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봇물이라도 터진 듯하다. 곳곳에서 낯뜨거운 추문과 비리 스캔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시계 바늘을 과거로 돌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연속이다. 국내 대표적 사학인 연세대의 총장이 부인의 편입학 금품 수수 의혹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고, 전군표 국세청장이 현직 국세청장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검찰 수사실 의자에 앉았다.

연인 신정아씨를 출세시키기 위한 권력형 비리라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건 못지않게 충격적인 권력의 스캔들이다. 국정감사를 마친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과도한 접대를 받은 추문은 관심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다. 대권을 움켜쥐려는 정치권의 막바지 폭로공방으로 어수선한 세상이 한층 암울해 보인다.

저명한 정보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는 현대 민주주주의 특징을 '스캔들 정치'로 규정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정당의 정강 정책이 아니라 미디어에 나타나는 정치지도자의 이미지에 따라 표를 던진다.

제품의 실속을 따져보기 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로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 행태와 유사하다. 이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신뢰성과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네거티브 공세가 가장 생산적 선거전략이다. 그래서 정치권은 끊임없이 추문을 양산하고, 정보의 왜곡과 조작도 불사한다. 잘 나가던 정치인이 추문 하나로 매장되고, 정권이 무너지는 현상은 전 세계 공통이다.

● 시대착오적 추문들의 홍수

대선을 불과 50일도 남겨두지 않은 국내 정치판의 모습이 딱히 그렇다. 유력한 대선주자들 사이의 공방은 상대방을 '한방'에 날려보내겠다는 스캔들 전쟁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대선출사표를 던진 이후 끊임없이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있으며,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노인 멸시'와 '패륜아'라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 움직임을 보이자 이명박 후보측에서 대번에 날린 공격의 화살은 '대선자금 유용의혹'이다.

아무리 정치의 속성이 그렇다 해도 정책적 이슈가 이처럼 실종된 선거판의 모습은 정말 기형적이다.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후보간 정책 대결은 더더욱 보기 어렵다.

이명박-정동영 후보간에 경제와 교육을 놓고 잠시 벌어진 공방도 수준이하다. 정책의 알맹이를 놓고 비교우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글자본주의', '20대 80 사회'식으로 상대방 정책을 도덕적으로 매도할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저지를 선언한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나 신자유주의 노선의 폐기를 주장하는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대선 후보간의 노선 차이는 오십보백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감사가 아니라 상대방 후보 비방의 장으로 변질된 이번 국정감사는 스캔들 정치의 하이라이트다.

스캔들 바람은 경제로도 번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비자금 의혹으로 삼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경우 그 자체만으로 삼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이후 비자금과 총수 개인 문제로 현대자동차, 한화, 두산 등 국내 대표적 대기업들이 법적 처벌을 받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 반기업 정서를 부르는 자승자박의 구태다.

● 일그러진 도덕적 정권의 자신감

우리 사회에 넘쳐 나는 스캔들은 높아진 국민 의식과 구시대적 관행 사이의 깊은 괴리가 빚어내는 불가피한 마찰음이다. 기업들이 공공연히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부 기관장들이 변칙적으로 활동비를 조달하는 '관행'은 여전히 뿌리가 깊게 남아 있다.

참여정부도 이러한 부패의 관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근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깨끗한 정권을 자처하며 사과도 하지 않는 참여정부의 자신감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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