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다. 생략은 적극적으로 사실을 조작하는 것에 비견할 만한 행위이며, 특히 언론에서의 생략은 명백한 왜곡보도에 해당한다. BBK 주가 조작에 관한 지난달 28일자 SBS와 MBC의 보도는 동일한 내용이 생략에 의해서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다른 인상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에 해당한다.
SBS는 BBK 주가조작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관련이 있다는 하나은행의 내부문건에 대해서 보도하면서, 그 서류에 이명박 후보의 친필 사인과 은행장 사인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생략하였다. SBS는 하나은행의 내부문서에 이명박 후보가 BBK의 공동 소유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과 직원의 실수로 내부문서에 이명박 후보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명박 후보 측의 대변인인 박형준 의원의 회견만을 편집해서 보도했다.
SBS 보도만을 접했을 때는 직원의 실수로 이명박 후보의 이름이 내부서류에 들어가 있다는 박형준 의원의 말이 진실돼 보였으며, 범여권의 이 후보에 대한 지나친 공세에 짜증조차 났다.
그러나 정확히 한 시간 뒤, MBC뉴스를 보면서 내가 모르고 지나갈 뻔 했던 생략된 부분을 발견했다. MBC는 그 내부 서류에 이명박 후보의 친필 서명과 은행장의 서명이 들어간 부분을 카메라로 비춰주고 직원의 실수라고 주장하는 박형준 의원의 회견도 함께 편집했다. 이어서 선임기자가 이명박 후보의 친필서명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해석하였다.
MBC의 보도는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 조작과 관련해서 무언가 더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서명을 직접 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도용한 것인지, 직접 했다면 어떤 의미인지 등…. 이명박 후보는 무언가 더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친필서명에 대한 생략보도는 분명 보도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언론에 대한 공중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호블랜드에 의하면, 신뢰는 진정성(trustworthiness)과 전문성(expertness)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전문성은 메시지 전달자가 관련된 일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competence)이 있는지 여부를 의미하며, 진정성은 메시지 전달자가 특정 방향으로 수용자의 행동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거짓 정보를 흘릴 가능성의 정도이다.
호블랜드식의 신뢰받는 언론이라 함은 특정 정파나 이익집단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사를 왜곡하지 않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그 진정성을 제대로 전달할 능력, 숙련된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물론 생략보도가 단순히 진정성 결여의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종종 공중을 왜곡할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자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서 중요사건의 일부가 생략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생략보도는 경계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퍼즐조각 없이는 퍼즐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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