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미술과 근ㆍ현대미술 작품을 두루 아우르고 있는 수장고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자랑이다. 4세기 가야 토기부터 구본창의 2005년 사진작품까지 리움의 수장고에서 나온 작품들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개인소장자 등으로부터 빌려온 일부 작품을 더하니 그대로 한국미술사의 도도한 흐름이 압축된다.
리움이 개관 3주년을 기념해 한국 시각예술을 대표하는 걸작들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을 내년 1월27일까지 개최한다. 총 61점의 전시작 중 국보가 5점, 보물이 9점에 추사 김정희와 겸재 정선부터 박수근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백남준 등 근ㆍ현대미술의 거장까지 총망라됐으니 가히 한국미술의 명품전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전시에 나온 서말의 구슬을 꿰는 끈은 ‘여백’. 비어있지만 기운으로 충만한 세계, 부재함으로써 존재를 가능케 하는 여백을 한국미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잡았다. 작품들은 시대 구분 없이 주제에 따라 세 구역에 나눠 전시되는데, 연관된 고미술과 현대미술 작품들이 세트로 배치돼 비교 감상이 가능한 점이 흥미롭다.
‘여백의 발견, 자연’이라 이름붙은 제1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산허리를 감싸는 운무를 여백으로 비워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현대미술작가 황인기가 베니어판 위에 인조 크리스털을 촘촘히 박아 인왕제색도를 재현한 ‘방(倣)인왕제색도’다.
화려하게 빛나되 값싼 가짜 크리스털을 통해 현대 물질문명의 통속성을 꼬집는 황인기의 작품은 자연을 바라보는 옛날과 오늘의 시각을 찬찬히 음미케 한다. 노송 아래 앉아 폭포를 내려다보는 윤두서의 ‘송하관폭포’(보물 481호)를 미디어 아티스트 김수자의 영상작품 ‘빨래하는 여자-인도 야무나 강가에서’와 겹쳐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두 번째 전시장 ‘자유, 비움 그러나 채움’에는 최근 국보로 지정예고된 달항아리와 달항아리를 끔찍이 아꼈던 화가 김환기의 뉴욕시대 점그림 ‘하늘과 땅’, 현대 조각가 정광호가 구리선을 엮어 만든 거대한 달항아리 설치작품이 한데 전시된다. 최소한의 조각 행위로 여백을 빚어낸 김종영의 작품과 점과 선의 반복을 통해 생성과 소멸을 얘기하는 이우환의 ‘선에서’를 비롯해 이강소, 서세옥, 이종상, 정상화 등 여백의 미를 구현한 중견ㆍ원로화가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전시장 ‘상상의 통로, 여백’은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과 백남준의 명상적인 미디어아트 ‘TV부처’,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회귀’ 등으로 꾸며졌다. 모두 상상력으로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넣으며 읽어야 하는 작품들이다.
부석사 가는 길처럼 고요히 여백 속을 산책하도록 건축가 승효상이 전시공간을 연출했으나, 꼼꼼히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 마음은 바쁘다. 기획전 일반요금 7,000원. 상설전과 기획전을 함께 볼 수 있는 데이패스는 1만3,000원. (02)2014-6901.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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