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할인점에 짓눌려 고사직전에 있던 두 재래시장이 있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이를 살리기 위해 두 곳 모두에 500억∼1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했다. 한 곳은 재기에 멋지게 성공했지만 다른 시장은 여전히 죽을 쑤고 있다. 희비가 엇갈리는 두 지역을 찾아가 그 이유와 배경을 들여다보았다.
■ '북적이는' 청주 육거리시장
“고등어 한 손에 3,000원. 마트보다 2,000원이나 쌉니다.”
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석교동 육거리시장. 수복신발, 대도떡집, 미원방앗간, 순자네죽집…. 간판만 언뜻 봐도 정겨움이 배어나는 가게와 노점들이 빼곡한 시장통 골목이 가격 흥정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평일인데도 마치 명절 대목 같다. 손님들 중에는 20,30대 젊은 층도 적잖이 눈에 띈다.
청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이 되살아 나고 있다. 한 때 고사위기에 몰린 시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육거리 시장의 변화 바람은 여느 재래시장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무심천변 10만㎡에 1,500여개 점포가 밀집해 있는 청주권 최대 재래시장인 이곳도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대형 할인점의 공세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상인들은 먼저 시설을 현대화하는데 눈을 돌려 대형 아케이드와 주차장을 마련하고 노점 좌판을 같은 크기로 규격화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겉 모습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한 상인들은 스스로 전문상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상인대학’ ‘유통경영대학’ 등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선진 운용기법을 익혔다. 상인들은 무엇보다 재래시장의 가장 큰 장점인 ‘사람냄새 나는’ 풍경 만들기에 주력했다.
청주의 대표적 전통 민속놀이인 남석교 지신밟기를 시장 내에서 재현했고 매주 손님과 상인이 함께 하는 이벤트도 선보였다. 100원부터 시작하는 꽃 즉석경매, 최고 단골선발대회, 상품의 무게 생산지 가격 맞추기 대회, 가장 목청 큰 상인을 뽑는 ‘최고 샤우트 맨을 찾아라’ 등 다채로운 행사를 발굴해냈다.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시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주요 기업체 등을 돌며 자매결연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육거리시장 부설 판매장을 개설했다.
육거리시장연합회 최경호(49ㆍ영진축산물) 회장은 “육거리는 여전히 3,500여명의 상인이 하루 3만명을 대상으로 7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청주권 최대 시장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 이 곳에 고객지원센터, 문화센터를 만들어 문화활동을 즐기면서 쇼핑도 하는 곳으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청주=글ㆍ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 '썰렁한' 천안 공설시장
1일 충남 천안시 문성동 천안공설시장. 120여개 점포가 백화점 못지않게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그러나 30분간 100m 남짓한 아케이드 통로를 지나간 사람은 100여명이 고작이다. 이 가운데 물건을 구입한 사람은 절반도 안됐다. 아케이드 사잇길의 점포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공설시장의 한 상인은 “시에서 주차장 등에 많은 지원을 했으나 오히려 손님이 줄어든 것 같다”며 “재래시장의 특징인 노점이 정리되면서 활기가 없어져 썰렁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충남 서북지역 최대 규모의 천안 재래시장이 쇠락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급속한 도시화로 경제활동 중심지가 서부지역으로 이동해 구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난 데다 새로 개점한 10여개의 할인점이 재래시장 상권을 빠르게 잠식했다.
이에 따라 천안시는 98억원을 들여 공설시장 현대화에 나섰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차장을 신설하고 비가림 시설에도 거액을 투자했다. 볼썽사나운 전선은 땅속에 묻었고 화장실과 급수대도 새로 단장했다. 시장활성화를 위한 시 조례제정도 준비중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사후 관리가 부실해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이다. 2005년부터 재래시장 5곳을 상대로 발행한 20억원의 재래시장상품권은 10월 현재 3년간 판매실적이 3억8,500여만원에 그치고 있다. 또 시가 노점상에 배정한 좌판대가 1,000만∼2,000만원에 전매돼 상품가격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부 시설은 부실공사로 말썽이 되기도 했다.
특히 상인들의 자구노력이 없다는 게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공설시장 대부분 상인들은 고객을 불러 들이기 위한 특별한 행사와 이벤트를 하지 않고 있다.
천안시 관계자는 “시설개선 이후 후속계획으로 차별화전략을 수립 중”이라며 “덤과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택배 운송, 유니폼착용 등 손님 끌어 모으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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