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에서 칩거 중인 그가 이번 주중 귀경, 한나라당 탈당과 출마결심을 밝힐 것임을 측근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출마설에 싸여있던 이 전 총재가 보여준 위력은 예상을 웃돈 것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단박에 3위로 밀어내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가고 있다.
그러나 막상 출마선언을 하게 되면 매우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혹독한 여론의 검증 대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넘어야 할 첫째 장애물은 불법 대선자금, 이른바 '차떼기'문제다. 이 전 총재는 "제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며 세 번이나 사과했지만, 그가 실제로 책임진 것은 없었다.
정치 분석가들은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모든 문제가 그를 당선시키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만큼 총체적 책임은 이 전 총재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며"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면 모르지만 다시 등장하는 순간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전 총재측은 '한나라당과 공동 책임론', 내지 '시효론'으로 돌파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대쪽 이미지와 원칙을 앞세워 정치를 했던 이 전 총재에게 차떼기는 씻기 힘든 멍에다. 대선잔금 등에 관한 추가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장벽도 간단치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정계은퇴 약속을 번복하고 정계에 복귀했고,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97년 당시 신한국당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하게 되면 앞선 두 사람의 '민주주의 기본정신 훼손'을 한꺼번에 하게 되는 셈이다. 대국민 설득논리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전 총재의 대선출마는 선거인단만 23만여명이 참여하고 수억원의 비용, 수개월의 시간이 들어간 한나라당 경선결과에 대한 사실상의 불복이다. 작년 말 경선 참여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자택에 기자들을 불러"현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1월1일 기자간담회)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나라는 좌경화의 기로에, 야당 후보는 절체 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 약속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펼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적으로 볼 때 이 전 총재의 '우경화 이념'이 과연 대선에서 통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패배 후 지금까지 야인생활 동안 이념좌표가 상당히 오른쪽으로 이동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대북 강경론에서 두드러진다. 그가 최근 보수단체 집회에 직접 참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는 집회에서 "정치권이 수구 꼴통으로 몰릴까 봐 몸조심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념적으로'집토끼'에 안주했다가 패했던 두 번의 대선 경험이 반복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이 전 총재는 두 번에 걸쳐 국민적 심판을 받았다"며 "현재로선 그가 출마할 어떤 명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이런 숱한 난관을 뛰어넘어 인생의 마지막 도박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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