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업부문에서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LG전자를 구해낸 초콜릿폰이 당시 400만대를 돌파(최근 1,400만대 이상 판매)하며 승승장구를 하고 있던 2006년 10월.
서울 역삼동에 있는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MC) 디자인 연구소에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라는 특별 지령이 떨어졌다.
초콜릿폰의 차세대 전략 제품인 ‘샤인폰’이 이제 막 얼굴을 내민 시기였으나 LG전자 수뇌부에서는 이미 차차세대를 대비한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었다.
LG휴대폰 디자인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온 MC 디자인 연구소였지만 이번 특별지령을 완수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휴대폰 본연의 통화 성능은 기본이고 전문가 수준의 최첨단 기능을 감성적인 디자인과 함께 제품에 녹여 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수반돼 있었기 때문이다.
“LG휴대폰의 기본 컨셉이 기존 감성 중심의 디자인에서 기술력을 조화시키는 ‘T(테크놀로지, Technology)자인’으로 선회하는 출발점이었어요. 어떤 목표 타깃층을 대상으로 무슨 기능을 어떻게 넣어야 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죠.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는 기분이었습니다.”
LG전자가 하반기 주력 모델로 내놓은 ‘뷰티폰’ 디자인을 주도한 조승철 MC 디자인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당시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지령을 받은 MC 연구소 팀이 몇 개월 동안 세계 각국을 직접 돌며 현장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은 고품질, 고기능의 디지털카메라를 휴대폰에 장착 시키는 것.
즉 종전의 카메라폰처럼 휴대폰에 카메라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휴대폰이 내장돼 있는 듯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1,000만 화소폰 등 고화소폰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었지만 휴대폰은 휴대폰대로, 카메라는 카메라대로 따로 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휴대폰에 붙어 있는 카메라는 그저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느낌이었으니까요. 조작법 또한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스쳐갔어요.”
조 연구원은 뷰티폰의 탄생 배경을 이 같이 설명했다. ‘뷰티’라는 애칭도 이용자들이 카메라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아름다움과 쾌감을 느낀다는 것에 착안해 지어졌다.
하지만 최첨단 사양의 디지털카메라를 휴대폰의 감성 디자인과 결합시킨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MC 디자인 연구원들이 A4용지에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만도 수 백장. 뷰티폰 디자인을 담당한 같은 팀 구성원들(3명)조차도 서로 의견이 달랐다.
난관은 그 뿐이 아니었다. ‘기능을 넣어야 된다, 안 된다’ 라며 생산 관련 부서원들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면서 밤샘 끝장 토론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기 일쑤였다.
피나는 노력 탓이었을까. 1년 가까운 산고 끝에 태어난 뷰티폰의 겉모양은 영락없는 디지털카메라의 모습이었다.
12.8㎜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뷰티폰은 510만 화소 카메라(독일 슈나이더사 인증 렌즈)에 손 떨림 방지는 물론 얼굴 자동 인식 및 자ㆍ수동 초점 기능까지 갖춰 웬만한 디지털카메라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통화 기능은 풀 터치 스크린을 적용한 프라다폰 방식을 채택했다.
10월말 유럽 14개국에서 블랙 컬러로 동시에 시판된 뷰티폰은 국내에선 이 달 말께 ‘다크 실버’ 색상으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LG전자 MC 디자인 연구소는 뷰티폰을 낳기 무섭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뷰티폰이 태어났으니 이제 자식이 둘이 됐네요. 집에 세 살 난 딸아이가 하나 있거든요. 힘 닿는 데까지 낳아야죠.(웃음) LG휴대폰이 정상에 오를 때까지 말입니다.” 조 연구원은 또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동료 디자이너들이 기다리고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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