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신세계 이마트가 자체브랜드(PB) 3,000여 품목을 내놓고 '가격혁명'과 거품빼기를 주창한 지 2주가 흘렀다. 이마트와 제조회사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선 이마트 매장에서는 '매대(상품 진열대) 전쟁'이 한창 불붙고 있다.
유통매장에서는 상품이 어디에 어떻게 진열되느냐가 곧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 서울의 이마트 용산점 명일점 자양점 천호점 등을 돌며 이마트-제조업체의 매대 진열현황 등을 점검했다.
'골든존'을 잡아라
지난 31일 이마트 자양점에 들어서자 마치 매장 전체가 이마트 PB상품들로 도배된 듯 했다. 유통매장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의 대리점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는 눈에 잘 띄는 목 좋은 위치 대부분을 이마트 제품이 차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예컨대 일반상품을 진열하는 매대(일명 본매대)에서 성인 눈높이 정도인 3, 4단은 주요상품을 진열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로 업계에서는 이를 '골든존'이라 불린다.
자양점에서는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 제품들이 이 골든존에 집중 배치돼 있었다. 국내 제조업체 제품들은 아래쪽으로 진열돼 주목도가 떨어졌다.
'이마트 사이다'와 '이마트 콜라' 등은 쇼핑객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었으나, 칠성 사이다와 코카콜라는 이마트 상품 아래에 진열되어 있는 식이다. 꽁치 통조림, 황도, 딸기잼 등도 마찬가지 상황.
매출이 가장 잘 일어난다는 통로 쪽 일반상품 진열대 끝단(엔드 매대), 별도의 행사매대(아일랜드 매대), 일반상품 진열대 옆에 간이로 만든 추가공간(분산진열대) 등의 대부분은 이마트 PB상품이 차지했다.
자양점의 경우, 이마트 사이다와 콜라는 음료수 코너 이외에 이마트 PB상품 홍보매대, 음료 행사매대 등 총 3군데에 배치돼 있어 소비자들에게 이마트 제품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은 목이 좋은 매대를 잡으려고 그간 이마트에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 부었으나, 이제는 이마트 PB상품 때문에 좋은 매대에 들어갈 기회조차 잡기 힘들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가격표에도 신경전
이마트는 일반상품진열 매대에서 자사가 가장 자신있는 PB제품을 기존 제조업계 1위 제품과 나란히 배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경쟁제품보다 20~40% 저렴한 가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품목에서는 가격표를 교묘하게 써 붙여 소비자에게 혼돈을 주는 사례도 있었다. 예컨대 용산점의 가격표만 보면, 이마트 '왕후의 밥'은 210g짜리 4개가 2,780원이고, 경쟁제품인 CJ의 '햇반'은 210g 3개가 3,640원이다. 이렇게 보면 CJ 햇반은 물건도 하나 적으면서 가격은 1,000원이나 더 비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CJ 햇반은 210g짜리 3개 외에 130g짜리 햇반 하나가 더 얹혀 있어 그 정도 차이는 나지 않는다. 이마트가 만든 가격표가 소비자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 업계측 주장이다.
가격표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 나왔다는 이마트 식품 PB 중 게맛살, 햄, 우유, 식빵 등은 이번 PB개편 전부터 '이플러스'라는 이마트 PB로 출시되어 왔던 것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브랜드가 '이플러스'에서 '이마트'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제조사와 원료 등에서 바뀐 점이 없는데 가격만 내렸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마트가 이번 PB강화 과정에서 PB제조사들에게 별다른 요인 없이 가격인하 압력을 넣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생기게 하는 지점이다.
한 제조업체의 매장 담당자(MD)는 "보통 PB상품의 경우에도 각 매장의 행사와 진열을 책임지는 MD는 이마트가 아니라 제조사 측에서 보내는 게 관례인데, 이번 가격인하 이후 PB제조사측에서도 비용상 MD를 못 보내겠다고 버티고 있다"며 "때문에 유례없이 이마트에서 담당MD를 따로 뽑아 곧 매장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애초 이마트에서는 제조사의 판촉비를 없애 가격인하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마트 태양초의 경우 1㎏당 3,980원짜리를 4㎏에 9,900원에 파는 식의 무리한 판촉행사를 PB제조사측에 강요하고 있다"며 "이 같은 가격파괴가 계속될 경우 PB제조사와 자체브랜드(NB) 제조사 모두 공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심혜이 인턴기자(중앙대 정치외교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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