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세청은 1963년 11월과 이듬해 2월 이즈카 다케시(飯塚毅) 회계사무소에 대한 대대적 세무조사에 나섰다. 80명의 조사관이 모두 80일 동안 회계사무소와 고객 업체를 샅샅이 뒤졌다.
고객 업체에 '탈세 지도'를 했다는 혐의가 표면적 이유였다. 고객 업체가 많은 이익을 내면 최대한 종업원들에게 특별상여금으로 나눠주어 법인소득세를 줄여 온 이즈카 회계사무소의 세무결산 방침은 당시로서는 낯설었고, 가공의 비용이라는 의심을 살 만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엣가시 같았던 이즈카 다케시 회계사 겸 세무사에 대한 국세당국의 조직적 보복이었다.
■이즈카는 '세금은 단 한 푼 모자라도 안 되지만, 많아도 안 된다'는 신조에 철저했다. 부당한 과세처분을 두고 국세당국과 다투어 자주 이겼다. 반면 당시 관행이던 세무관료 접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악연에서 비롯한 세무조사를 이즈카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당국은 고객 업체를 협박하고, 때로는 다른 탈세 건을 무마해 주겠다고 회유해 이즈카와의 계약을 끊게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검찰까지 동원돼 회계사무소 직원 4명을 구속해 수사했지만 '탈세 지도'의 증거는 없었고, 70년 법원의 무죄 선고로 '이즈카 사건'은 막을 내렸다.
■일본 경제소설의 1인자인 다카스기 료(高杉良)의 실명소설 <불요불굴> (상ㆍ하)을 통해 한결 내막이 선명해진 이 사건은 흔히 말하는 '조세정의'의 관념을 흔든다. 세무조사를 하는 쪽이 정의의 편이고, 받는 쪽은 불의의 편이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불요불굴>
너무나 무리한, 불법적 세무조사인데도 불구하고 말단 직원부터 최고간부까지 똘똘 뭉쳐 억지를 부리는 장면은 '조세정의'가 국세조직과 구성원을 보호하고, 조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구호일 뿐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국내에서도 국세청만큼 내부 결속력이 강한 조직은 드물다는 말이 무성하다. '재경마피아'(Mofia)라는 말을 듣는 재경부조차도 국세청의 결속력에는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국세청을 건드리면 언젠가 '조직의 복수'를 겪는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대통령의 청장 인사권을 빼고는 사실상 견제수단도 마땅하지 않다.
전군표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향방이 관심을 끄는 것도 '상납금'에 대한 궁금증 때문만이 아니다. 정치권력이나 재력과 함께 우리 사회의 현실적 힘인 '세력(稅力)'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투명 납세가 실현되기까지 끊이지 않을 걱정거리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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