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금융허브가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비주류 경제학자로 국내외 경제학계에서 논쟁적 인사로 떠오른 장하준(44ㆍ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국내의 금융시장 개방정책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장 교수는 1일 서울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한국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자본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고급 금융인력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것은 어림없는 이야기"라고 못박았다.
장 교수는 "홍콩, 싱가포르는 장기간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몇 백년 동안 서구인들이 살아온 커뮤니티가 있어 금융허브가 될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는 역사를 바꾸지 않고서는 금융허브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 등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금융 중심을 차지했다"며 "동북아에서는 역시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 상하이나 일본이 금융허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금융 규제를 모두 풀어버리면 국내 경제수준에 맞지 않는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원화 평가절상 압력이 생겨 오히려 제조업 수출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며 "제조업을 죽이면서 금융을 발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국내의 '서비스 산업의 과잉 고용'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백화점에는 주차권 발권기에서 표를 뽑아주는 여종업원이 있다"며 "발권기는 종업원을 없애기 위해 만든 것인데, 종업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인력 과잉"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영국, 미국 서비스 회사 사장 눈으로 본다면 국내 서비스업은 이렇듯 과잉 고용이 존재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면 엄청난 실업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의 특징으로 의사 직종의 인기가 높은 것과 영어교육 열풍을 들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이공계 출신 연구개발직을 가장 먼저 구조조정해 우수한 인력이 의사로 몰렸다"며 "이는 국가적 차원의 인적자원 배분 왜곡"이라고 진단했다.
영어교육 열풍에 대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영어를 전문적으로 하고 다른 전공을 할 사람은 자기 전공에 매진하면 된다"며 "영어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1990년부터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장 교수는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최근 '나쁜 사마리아인' 등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책을 발간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장남이자 장하석 런던대 교수의 형이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