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곤 전 부산지방 국세청장으로부터 6,000만원을 상납 받았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던 전군표 국세청장은 검찰조사에서 "국세청장의 부족한 업무추진비를 지방청장이 보조해 주는 관행에 따라 몇 차례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 짐작했던 일이지만 막상 자백을 들으니 어이가 없다.
돈을 받았으면 최소한 입이라도 다물고 있을 것이지 "거대한 시나리오가 있는 느낌" 이라며 불쾌한 얼굴로 검찰을 비난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놀랍다. 전군표 청장의 권유로 구속중인 정상곤씨를 면회하러 가서 상납사실을 말하지 말도록 부탁했다는 이병대 부산지방 국세청장의 말은 더 역겹다.
● 무슨 조폭 범죄조직도 아니고
이 청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지금 누구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말하면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남자로서 가슴에 묻고 가는 게 좋겠다"고 정씨에게 말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남자로서 가슴에 묻고 가라" 운운하는 이 사람들은 범죄조직 두목과 그 부하들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국세청장과 전현직 지방국세청장들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세무공무원들의 최고수장이라고 하겠는가.
전군표 국세청장은 청장의 판공비를 지방청장들이 보조해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그것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훔친 것, 뺏은 것, 구걸한 것을 나누고 상납하는 것은 강도나 거지들이 하는 짓이다.
국민들은 국세청장이 주장하는 '국세청의 관행'을 도둑질 한 것을 나누어 먹는 것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국세청장은 시대가 변하고 국민이 변한 것을 모르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국감 향응'도 마찬가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과기처 7개 산하기관 국정감사를 벌인 뒤 피감기관이 대접하는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함께 했다는 소식은 듣기만해도 지겹다.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도 국감을 마친 뒤 장차관 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2차로 술판을 벌였다는데, 국감 향응 스캔들이 사라질 날은 과연 언제인가.
감사를 하는 사람과 감사를 받는 사람이 함께 어울려 식사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이 아직도 관행이라면 그 국회는 정신이 썩은 국회다. 검사와 피의자, 판사와 원고 피고들이 어울려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했다면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난리를 치며 개탄했겠는가.
과기처 산하기관들이 베푼 저녁식사 값이 700만원, 술자리까지 합치면 1,000여만 원을 지출했다는데 국민이 납득할까. 밥자리 술자리 하나 자제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신뢰를 얻겠다는 걸까.
개혁의 첫걸음은 자기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을 개혁하지 않고는 다른 아무것도 개혁할 수 없다. 판공비가 부족해서 상납을 받는 것이 관행이라고 생각하는 국세청장, 피감기관의 향응을 받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다른 무엇을 개혁할 수 있겠는가.
● 아름다운 공직자들을 보고 싶다
아름다운 공직자들을 보고 싶다. 김밥을 먹으며 국감 준비를 하고, 국감이 끝난 후엔 무엇이 부족했는가를 검토하면서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싶다.
한 푼이라도 국민의 세금을 아껴서 쓰고 부하직원들의 본보기가 되려는 국세청장을 보고 싶다. 거드름 피우며 시대착오적인 관행을 내세우는 대신 자신도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공직자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작년에 국내 기업이 룸살롱 등 국내 유흥업소에서 결제한 법인카드 비용이 1조4,00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이번 국감에서 밝혀졌다.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를 긁어대는 접대문화 역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얻어먹는 문화에서 나온 '거지같은 관행'이다.
이번에 불거진 국세청장과 국회의원들의 관행은 시대정신에 대한 공직자들의 무지와 무감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거지가 아니라면 거지 같은 관행을 버려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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