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정권 연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효력을 정지시키는 임시헌법령(PCO)을 발동한 것이다. 야당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며 무샤라프가 초강수를 던짐으로써 파키스탄 정국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파키스탄 대법원에는 장갑차 등으로 무장한 군 병력과 경찰이 배치됐다.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은 청사 밖으로 쫓겨났고 압둘 하미드 도가르가 새로운 대법원장으로 임명됐다. 모든 대법관과 고등법원 판사들이 가택 연금됐고 무샤라프의 재선을 반대해 온 야당의원이 구금됐다. TV와 라디오 방송국에도 병력이 배치돼 방송 송출이 중단됐다.
무샤라프가 초헌법적 조치를 취한 이유는 사법부가 자신의 정권 연장에 제동을 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무샤라프는 지난달 6일 의회 간접선거로 치러진 대선에서 97%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승리했으나 대법원에서 후보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할 경우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었다. 이달 6일께 내려질 최종 판결에서 대법원이 후보자격을 문제삼을 것이라는 현지 언론의 보도까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무샤라프는 임시헌법령 선포 이유로 “일부 판사들이 극단주의에 맞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활동에 반하는 행위를 통해 정부를 약화시켰다”고 밝혀, 이번 사태가 사법부를 직접 겨냥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따라서 무샤라프는 이번 조치를 통해 새롭게 대법원 재판부를 구성한 뒤 자신의 후보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이끌어 내 정권 연장을 시도할 전망이다.
그러나 야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무슬림연맹은 성명을 통해 “모든 국민이 이번 조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촉구했고, 최근 두바이로 일시 출국했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도 비상사태 소식을 듣고 바로 귀국한 뒤 “이번 조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아닌 ‘계엄령’ 선포”라고 규정했다. 대법관연합회 의장을 지낸 초드리 이크람은 “법조인들은 모든 비헌법적인 조치에 저항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비판도 잇따르고있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파키스탄은 조속히 민정과 민주주의로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맥심 버니어 캐나다 외무장관은 “비상사태 선포가 파키스탄 국민에게 주어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가능성과 민주 발전, 사법 독립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데이비드 밀리반드 영국 외무장관은 “파키스탄 정부가 헌법에 따라 행동하고 예정대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 수행을 위해 무샤라프를 지지해 온 미국은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든 존드로 대변인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3일 이번 조치에 대해 실망과 유감을 표명하면서 내년 1월 총선을 예정대로 치를 것을 촉구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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