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고종 원년(1864년) 중건한 경복궁 광화문이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최초의 광화문과 위치와 규모가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화문 제자리 복원을 위해 옛 광화문 터 일대를 발굴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1일 “고종 때 화재로 사라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세운 광화문 기초 밑에서 태조 4년(1395년) 경복궁 창건기의 광화문 흔적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태조 시절 광화문 건립에 앞서 지반이 허약한 뻘층과 모래층을 다지기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꽂은 지정말뚝도 촘촘히 확인됐다.
이번 성과는 광화문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나, 고종 시대에 중건된 경복궁이 규모와 크기에서 태조 때와 거의 동일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연구소 조사단은 “그동안 경복궁 창건기 광화문의 위치나 규모가 고종 중건기의 것과 비슷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았는데, 이번 발굴을 통해 중건기 광화문이 조선전기 광화문 기초 위에 건축됐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태조가 새 왕조의 정궁(正宮)으로 창건한 경복궁은 임진왜란 불타 버린 뒤 고종 중건 이전까지 약 25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광화문 기초 밑에서 다량의 고려시대 기와와 13세기 무렵 유행한 고려청자 파편이 확인돼 경복궁 일대가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중심부였을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려청자 파편은 의자나 다른 물건을 올려놓는 받침대로 사용되는 돈(墩) 중 최고급품의 일부분으로 밝혀졌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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