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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2) 이기호·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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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2) 이기호·정이현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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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키워드로 본 후보작

작가론 키워드 : B급

이기호는 B급 작가다. 그가 A급에 미치지 못하는 소설을 쓴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의 문학적 상상력이 주로 B급 문화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는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성경의 숭고한 의고체 문장(‘최순덕 성령 충만기’)과 비트박스와 랩의 ‘경박한’ 리듬과 수다(‘버니’)가 공존하는 세계, 햄릿이 본드를 불고(‘햄릿 포에버’), 건달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세계(‘옆에서 본 저 고백은 – 고백시대’)가 이기호의 세계다.

그리고 한국에서 장편소설이 부진을 면하는 방책에 대한 물음, 그 진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자가 이기호다. ‘전국의 조교들은 단결하라’. 조교들이 단결해서 단편을 복사하지 않으면 된다는 요지의 발언이거니와, B급 문화의 통쾌함이 이런 것이다.

작품론 키워드 : 하이브리드

이기호의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은 ‘하이브리드’이다. 물론 소설은 스턴이 <트리스트럼 섄디> 를 쓰던 때부터 이미 잡종 장르였다. 원칙적으로 소설의 제국주의는 모든 장르를 제 영토로 삼을 만하다. 시도, 비평도, 일기나 수기도 다 삼킬 수 있을 만큼 소설은 식욕이 강하다. 그리고 이기호가 등장한 2000년대 한국 소설에서는 랩이나 비트박스, 성경의 의고체, 고전 비극의 대사, 심지어는 용의자의 조서나 백수의 자기소개서까지도 소설 장르에 포함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이상한 전도이기도 한데, 소설이 인접한 모든 하위문화들을 제 영토로 삼자, 소설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간 전통적 소설 관습이라 불렸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 역설적으로 소설의 제국주의를 통해 소설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작업이야말로 이기호의 장기다.

후보작의 키워드 : 소설

이번 후보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에는 유독 메타픽션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 많다. ‘나쁜 소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 ‘수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등이 다 그런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2000년대 작가들에게 특징적인 어떤 대타의식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소설 쓰기에 대한 모든 엄숙주의, 신비주의에 대한 거부, 그러니까 9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에 대한 냉소와 조롱이 그것이다. 그에게 소설 쓰기란 하룻밤의 매춘을 위한 도구이거나, 흙으로 요리를 만드는 일에 다름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폐허로 변한 세계에서 수킬로미터의 콘크리트를 혼자서 뚫고 책에 이르려는 필사의 노력이기도 하다.

■ 미니인터뷰

"사회적 통념 앞에서 늘 갈팡질팡… 난 독자와 호흡하는 소설 노동자"

-‘소설 쓰는 노동자’를 자임한다.

“시가 터져나오는 예술이라면, 소설은 논리를 갖추고 출근하듯 꾸준히 써야 하는 장르다. 또 소설은 고매하게 정답을 일러주는 게 아니라 독자와 함께 질문하는 것이다. 소설가가 별 게 아니다.”

-‘이기호 소설’ 하면 다채로운 형식 변주가 떠오른다.

“형식이 아니라 목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실험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작중 인물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에 여러 형식을 택하게 된다.”

-랩부터 의고체까지 자연스레 구사하는 언어 감각이 돋보인다.

“많은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 애써왔다. 할머니, 종로3가 약장수, 탑골공원의 노인, 10대 청소년…. 일부러 외우고 기억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쓸 때 튀어나오는 것 같다.”

-이전엔 작업을 거는 마음으로 썼다면, <갈팡질팡하다가…> 는 누가 작업을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말했다.

“첫 작품집을 쓸 땐 다른 작가와의 차이를 지나치게 의식했다. 이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이번 작품집 속 단편을 쓰며 마음이 편해졌다. 차이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깊게 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갈팡질팡’이란 표현에 당신의 소설론이 담긴 듯하다.

“다들 그렇다고 하는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고 할까. 한마디로 주제가 없다는 건데(웃음), 무언가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미덕인 것 같다.”

■ 약력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추계예대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99년 <현대문학> 통해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 고3 시절 여자에게 訪?거느라 쓴 400통 넘는 편지가 ‘창작’의 시작. 요즘은 집 근처 사설 도서관에서 고3들과 나란히 앉아 장편 마감 분투 중. 글 쓸 때 축구 유니폼 즐겨 입음. 육아(育兒)와 첼로 초심자.

김형중ㆍ문학평론가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정이현 <오늘의 거짓말>

작가론 키워드 : 악녀

2002년 정이현은 우리 문학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오정희의 소설들처럼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욕구를 통해 가부장 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균열된 내면세계를 그리는 것도, 박완서의 여성소설들처럼 가해와 피해의 관계로 설정된 남녀인물들을 통해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공격적인 성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정이현의 등장은 남성사회와 맞서는 배타적인 여성성도 남성사회를 끌어안는 풍요로운 여성성도 아닌, 자신의 여성성을 성공을 위한 치밀한 전략적 무기로 활용하는 새로운 악녀들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잘나가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순결과 미모,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애술 등의 제도적 매뉴얼들을 부지런히 연마하고 실천한다. 그녀들에게 여성의 삶이란 여성의 역할을 연기(演技)하는 삶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품론 키워드 : 파국

마치 불나방들처럼 이 시대의 성공신화가 밝혀놓은 화려한 불빛들을 향해 몰려드는 악녀들은 예정된 운명처럼 파국에 직면한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에서 정이현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놀랄 만큼 생생한 자본주의적 욕망의 생태학은 성공이라는 휘황찬란한 천사의 얼굴 뒤에 숨은 파국이라는 악마의 함정을 욕망에 달뜬 내부자의 시선을 통해 정교하게 형상화해낸다.

<오늘의 거짓말> 에서 그 내부자의 시선은 악녀들의 삶을 떠나 중산층의 삶 곳곳으로 파고든다. 이 시대의 삶을 지배하는 기브 앤 테이크의 거대한 네트워크. 그것은 자유를 내주고 일상의 평온과 안녕을 사는, 혹은 나를 지불한 대가로 제도와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타인의 삶을 사들이는 것이다. 파국은 이제 나날의 일상이 된다.

<오늘의 거짓말> 키워드 : 거짓말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연기하고 가면을 쓴다. 마치 중국의 변검술처럼 얼마나 재빨리 가면을 갈아치울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인 것처럼 되어버린 시대다. 얼굴 위의 가면은 이제 우리의 맨얼굴과 구분할 수 없는 제2의 피부가 되었다. <오늘의 거짓말> 에서 정이현은 거짓말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황폐한 내부를 찬찬히 응시한다. 그 응시의 시선 속에는 이전 작품들에서 보이지 않던 삶의 페이소스가 어른거린다.

우리의 삶이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허구임을 알아버린 자의 페이소스를 담아 그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맨얼굴을 기억하는가? 체제가 요구하는 삶의 프로그램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보지 못한 당신의 삶은 진정 행복하고 안전한가? 라고.

■ 미니인터뷰

“예전의 가차없고 냉정했던 시선… 지금은 마음 한자락에 애잔함도”

-‘정이현 소설’ 하면 으레 강남 중산층 젊은 여성이 떠오른다.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오늘의 거짓말> 중엔 ‘어금니’ ‘삼풍백화점’ 정도만 그럴 뿐, 강남 소재의 단편이 많지 않다. 물론 내가 도시에서 성장한 30대 여성이다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그 쪽에 기울긴 한다.”

-‘삼풍백화점’은 자전적 소설로 알고 있다.

“소설 내용대로 당시 대졸 실업자로 건물이 붕괴되기 20, 30분 전 그 곳에 있었다.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막막했지만 그립던 청춘도 같이 무너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와 내 세대가 겪었던 시간을 다루고 싶었고, 그런 단편이 <오늘의 거짓말> 에 다수 들어 있다.”

-‘도시 악녀’들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헤쳤던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래 시선이 점차 따뜻해지고 있다는 평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예전엔 가차 없고 냉정했는데, 이젠 아무리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마음 한자락엔 뭔가 애잔한 것을 숨겨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오늘의 거짓말> 후기에 “(소설 앞에서) 도망치는 일은 영원히 없으리라”고 썼다.

“똑같은 얘기, 경험한 얘기는 절대 쓰지 않겠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글이 더 안 써졌다. 이번엔 내 세대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피부에 와닿는 얘기를 쓰고자 했다. 그러면서 소설뿐 아니라 현실로부터도 도망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약력

1972년 서울 출생. 성신여대 정외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받으며 등단.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 고교 시절엔 시인 지망하다 “함축적 시어보단 질펀한 수다에 자신 있어서” 장르 전환. 주차(駐車)도 잘함. 설렁설렁 쓰다가 마감 닥치면 괴력 발휘. ‘기억=오늘의 거짓말’에 대한 장편 준비 중.

박혜경ㆍ문학평론가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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