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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불만 남녀, 전투가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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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불만 남녀, 전투가 치열하다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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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남자가 된장녀 타령하는 것 본 적 있으세요. 괜히 열등감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닐까요.”

“툭하면 알파걸 운운합니다. 인정 못 해요. 왜 남자가 계속 양보하고 자리를 내줘야 하죠? 역차별이 못마땅합니다.”

2007년. 우리의 남과 여들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른바 ‘성전(性戰)’이라는 고상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남녀간 갈등구도가 사사건건,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서로 이해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을 법한 이슈를 놓고 세상은 남과 여라는 두 개의 영토로 나뉘어 치열하게 치고받습니다.

사실 ‘성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그 옛날 윤복희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때도 남과 여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대립각을 세웠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의 성전은 조금 양상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성전에서 남자들이 유리한 고지에 선 채 큰소리를 뻥뻥 치는 게 예전의 모습이었다면 최근의 성전에선 오히려 전세가 뒤집혀 여성이 공세를 펼친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결국 남자는 ‘파이’를 다 뺏기게 된 터라 신경이 날카롭고, 여자 입장에선 성 평등의 목표가 점차 가까워지는 마당에 좀 더 남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보니 두 성의 전쟁은 이전보다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하나 더, 불만을 먼저 터뜨리는 쪽도 거의 남성이라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전은 얼굴을 볼 필요도, 이름을 알 필요도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집니다. 2007년 가을, 성전의 현장을 들여다봅니다.

“요즘 남자들도 살기 어려워요. 왜 자꾸 모든 남자를 범죄자로 몰고 갑니까? 여성 전용공간을 만들려면 아예 남성 전용칸도 만드세요. 그럼 더 확실한 거 아닌가요. 지하철까지 여성 할당제입니까. 안 그래도 출퇴근 시간 장난 아니게 붐비고 있는데 더 아수라장 됩니다. 이 나라는 여자만 사는 나라인가요?”

서울시가 내년부터 지하철 전 구간에서 여성 전용칸제를 시행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1일 서울시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남성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애니컬’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남긴 한 남성은 “남성과 여성은 따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죠. 여성을 분리해놓는 자체가 남성을 성범죄자로 본다는 시각 아닙니까”라며 서울시와 이에 찬성한 여성들을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남성들의 문제 제기(?)는 결국, 또 하나의 성 대결 국면을 만들었고 남성팀과 여성팀에서 출전한 누리꾼 대표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전투를 벌였다. 한 여성은 “여자들이 얼마나 당했으면 그러겠어요”라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정도는 그나마 점잖은 수준. 올해 성전에서 주목할만한 단어인 ‘된장녀’, ‘알파걸’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전투는 금세 피 튀는 백병전으로 격화된다.

지난달 27일 손에 부상을 입어 붕대를 감은 이승엽 선수가 그의 부인 이송정씨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남녀 네티즌이 격돌이 시작됐다.

한 남성이 “된장녀세요? 남편은 야구하다 다쳤는데 명품쇼핑이나 하다니”라며 포문을 열자, “별소리를 다하네. 운동선수 부인은 명품 쇼핑 좀 하면 안되나? 이승엽 선수 100분의 1도 못 버는 사람들이 꼭 된장녀 타령이야”라고 받아친다.

이송정씨의 카트에 실린 명품 가방들이 화근이 된 것. ‘된장녀’, ‘찌질이’ 등 상대 성을 비하하는 말들로 게시판은 빼곡히 채워진 것은 물론이다. 이송정씨는 이에 대해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편의 일본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다”라고 밝혔다.

얼마 전 모 대학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신축 기숙사를 놓고 설전을 벌인 것도 대표적인 성전의 사례. 남학생 기숙사를 학교 강의실에서 5km나 떨어진 곳에 지어놓은 학교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남학생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역차별’을 주장하며 진정을 냈고, 한동안 치열한 성전이 진행됐다.

사회 곳곳에 늘어가는 ‘여성 편의’가 못마땅한 남성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요즘 ‘성전’에서의 큰 특징. 초등학교 교사 남성 할당제가 이슈로 떠오를 무렵 한 교육대학 남학생은 “여성전용 요금제, 여성전용 이용시설, 여성전용 주차장 등 무슨 놈의 여성전용이 이렇게 남발하는 지, 어느 화장실에 가보니 여성 화장실에 ‘여성전용 화장실’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더군요”라며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양성 선생님으로부터 교육받아야 할 아이들의 미래는 팽개치고 남성 할당제를 반대하는 모습이 어이없습니다”라고 싸움을 걸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전이 난무하는 현상에 대해 “20년 전만 해도 이런 성별간의 논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성의 전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 “시대가 변해가면서 서로의 전형을 생각하는 의식도 급격하게 변해 성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현재는 양성이 부정적인 전형에 대해 싸우기 때문에 조정 국면이 필요한 상황이고 다행히 좀 더 지나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관용과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단체의 관계자는 “최근엔 여성의 권리증진에 남성들이 눌렸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며 “여성도 진정한 양성평등의 달성을 위해선 여성이니까 봐줘라는 식의 구태를 벗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사랑보다 갈등" 性戰 트렌드를 이용하는 TV프로들

케이블 TV의 인기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에서 영애는 “세상에 괜찮은 남자는 하나도 없다”고 외친다. 그녀의 눈에 대부분의 남성은 성매매를 하고 좁쌀 같은 성격을 지닌 채 아부에만 공을 기울이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존재일 뿐이다.

대중매체, 특히 TV는 남녀의 ‘성전(性戰) 트렌드’를 교묘히 이용해 시청자를 끌어 모은다. 남녀 시청자가 공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려 하기보다, 남성 시청자용, 여성 시청자용으로 각각의 성에 어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전략을 펴오고 있다.

때문에 TV 속 남녀는 서로 감싸주는 파트너가 아니라 갈등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막돼먹은 영애씨> 를 접하는 남성 시청자는 남성 보기를 ‘X’보듯 하는 영애 때문에 속이 마냥 편할 수가 없다. ‘남성=사회 부조리’로 보이는 극의 줄거리는 여성 시청자에겐 쾌감을 전해주지만 남성 시청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MBC <하얀거탑> , KBS <대조영> , SBS <연개소문> 은 여성 시청자에 대한 배려보다 남성의 관심을 끄는 스토리로 무장했다. <하얀거탑> 은 여성을 위한 멜로가 배제된 대신 남성들의 조직문화, 정치력의 영향력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 장준혁(김명민 분)의 성공을 방해하는 ‘적’으로 그려진 이윤진(송선미 분)은 시청자들로부터 “앞뒤 사정을 모르고 낄 데 안 낄 데 다 낀다”는 눈총을 받았다. 남성 시청자를 타깃으로 잡은 드라마에서 여성을 아예 걸림돌로 몰고 간 장치이다.

토크쇼는 또 어떤가. 유독 요즘 들어 남녀 출연자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 상황을 연출한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tvN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 <스캔들> , 코미디TV <데미지> 등은 모두 남녀가 서로 속이고 배신하는 이야기들을 줄거리로 엮는다. 한마디로 세상엔 믿을 남자, 믿을 여자가 없다는 메시지를 쏟아낸다.

사안이 생기면 득달같이 형성되는 남녀 간의 전선(戰線)을 일부 조장하고, 한편으로는 그 분위기를 이용하는 TV프로그램의 모습들이다.

단적으로 케이블TV의 경우 온 스타일, 올리브는 여성 채널, 슈퍼액션, XTM은 남성 채널로 경계선이 그어지고 있는 현상도 감지된다.

남과 여를 확실히 구분 지을수록 방송국 입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채널은 더 넓어진다. 사회에서 일상화되는 ‘성전’이 방송국에 반가운 이유이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공중파보다 특히 케이블TV의 경우 어차피 수십 %의 시청률을 올리지 못할 바에 남과 여 중 한 성에 타깃을 맞춘 프로그램에 주력하면 오히려 광고유치에 더욱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결혼생활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남과 여의 거리를 벌려놓는 불륜 드라마들, 혼자 사는 젊은 남녀가 ‘쿨’한 것처럼 보여지는 프로그램들이 차고도 넘친다. 시청자들은 TV 앞에 앉아 화목한 커플보다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성전’이 싫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진하게 느끼고 있다. 그들 가정도 ‘성전’의 포화에 휩싸일 위기가 감돌고 있는데도 말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윤복희 미니스커트·軍복무 가산점… 性戰은 계속돼 왔다

■ 윤복희의 무릎팍 테러

1967년 세상이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양인의 나라에서 지내다 온 조선의 처자가 허벅지를 벌겋게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 것이다. 男은 경악을 넘어 분노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대부분의 女도 그 분노에 맞장구를 쳐야 했다. 그러나 소수의 女는 그 당당함에 환호했고, 치마를 뎅겅 잘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뎅겅’은 아마도, 성이 사회적 대결의 편가름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30㎝자를 든 공권력이, 뒤늦게 이 대결에 희극성을 더했다.

■ 섬뜩한 가위질… 보비트 사건

1993년, 미국에서 한 여성이 계속된 폭력을 못 이기고 남편의 성기를 자르는 사건이 있었다. 본질은 가정폭력과 그것을 해소할 사회적 통로의 부재에서 온 비극. 하지만 이 사건의 ‘쇼킹’함은, 그런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다혈질의 한국 사회를 광란 속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女의 존재론적 한계, 男의 근원적 폭력성이 막말과 막말로 이어지며 거친 물결을 이뤘다. 그리고 그 ‘가위질’의 여파는 아직 남아있다.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에서, 이 사건은 아예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 억울하면 군대 가라

1998년 10월, 대학 졸업을 앞둔 몇몇의 女가 공무원 채용 시 군복무를 마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대다수, 설령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男들은 코방귀를 뀌며 웃었다. 그러나 덜컥, 위헌결정이 떨어졌다. 사회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직업선택의 자유, 군복무에 대한 보상의 형평성 같은 본질은 아예 뒤편으로 밀려났다. 대신 논란의 주제가 된 것은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와 “마초는 가라”라는 동물적 쟁투. 그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 딸들의 반란, 여성 종중원 인정

대법원은 2005년 종중원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출가 여성 8명이 낸 소송에 대해 “여성도 종중(宗中)의 회원 자격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1958년 이후 47년 동안 유지돼 온 “종중 회원은 성년 남자에 한한다”는 판례를 뒤집은 것이었다. 충격은 컸다.

여성계는 딸들을 차별하는 오랜 관습이 사라질 것을 기대했으나, 유림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강상(綱常)이 무너질 것”이라며 극렬히 반발했다. 결국 논란은 “제사도 안 지내면서 선산만 갈라 먹으려 들 것”이라는 마타도어로 번지면서, 감정과 감정이 대립하는 깊은 골을 만들었다.

■ 연예인 부부의 파경, 관음증의 격돌

최근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연예인 커플의 이혼이 줄을 이으면서, 이들을 ‘씹는’ 男과 女의 입도 분주하다. 굳이 본질을 말하자면, 남의 사생활에 지나친 억측을 말아야 한다는 것쯤 될까? 그러나 전투적으로 진화한 한국의 男과 女는 이 뉴스에서도 어김없이 격돌한다.

열심히 자기식대로의 상황도를 그려 가며 “누구누구 탓에… 결국 남자(혹은 여자)는 저열한 생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경쟁적 진실게임은 있지만, 진실은 늘 실종된 지 오래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관음적 시선도 男과 女의 대립 형태로 나타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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