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의 제후들은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 부국강병과 전쟁에만 매달려 백성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민생이 극도로 피폐해진 것은 당연한 귀결. 맹자는 백성 사랑 정치, 즉 인과 의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王道)정치를 외쳤다.
농사철에 전쟁을 하지 않으며, 세금을 적게 거두고, 형벌을 가혹하게 집행하지 말라, 백성을 아끼고 보살피면 저절로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부국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역량이 없는 군주는 백성들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는 역성혁명론도 이런 논리의 연장이다.
▦ 그러나 당시의 제후들은 당장의 부국강병책만을 구할 뿐 맹자의 주장을 흘려 들었다. 맹자는 경(卿)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제나라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먹히지 않자 제 선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길을 나서는 맹자의 표정이 좋지 않자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기분이 썩 좋으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스승께서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위로인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하고 떠나는 스승에 대한 불만인지 제자의 물음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피일시(彼一時) 차일시야(此一時也)."
▦ 송대(宋代)에 맹자주석을 집대성한 주희(맹자집주)는 이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맹자와 같이 고매한 분이 상황에 따라 기분과 말을 달리했다고 하기가 좀 그렇다.
그래서 다른 해석이 나왔다. "그때도 한 시기이고, 지금도 같은 시기이다"(漢代 조기 맹자장구, 淸代 초순 맹자정의). 이어지는 맹자의 말을 보면 이 해석이 더 그럴 듯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500년마다 어진 임금이 나오고, 그 무렵에 뛰어난 경륜가가 나온다. 주 문왕 이후 700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지금 세상을 화평하게 다스리고자 한다면 나 말고 누가 있겠는가."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최근 했다는 "차일시 피일시"발언이 화제다. 얼마 전까지도 정계 은퇴 당시의 입장과 다름이 없다고 해온 그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뜻으로 했다면 대선 출마를 적극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전 총재처럼 중후한 분이 단순히 입장 바꾸기 구실로 맹자를 인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전 총재 나름으로는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시대적 사명'같은 것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객관적 타당성은 전혀 다른 문제지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