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2008년 11월4일)을 둘러싼 경쟁구도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냐, 아니냐’의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는 민주당의 힐러리 의원(60)을 중심축으로 대선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어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다고 봐야 한다.
민주, 공화 양당의 대선주자들이 모두 힐러리 의원을 정조준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으나, 힐러리 의원의 지지율은 한때 50%를 넘은 뒤 40% 중후반대의 안정적인 기조에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힐러리 의원의 대세론은 그가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수세에 몰렸음에도 별 손실을 입지 않은 데서도 확인된다.
민주당에선 부통령 후보에 대한 논의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으나 힐러리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거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로선 힐러리 의원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려는 시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경쟁에서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지율 20%대로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은 ‘부통령론’의 최대 피해자다.
유권자들로부터 부통령 후보로 적합하다고 여겨질수록 대통령 후보에서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의원은 최근 “결코 부통령 후보로는 나서지 않을 것이며 힐러리 의원이 요청해도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나중에 말을 번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그 가능성을 원천봉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바마 의원의 처지다.
한편에서는 힐러리 의원 대세론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난다. 힐러리 의원이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강력한 ‘외조’와 거부감을 보이던 여성들의 지지가 확산되면서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지만 최근 미 언론들로부터는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논란거리가 될만한 현안에 대해서는 핵심을 피해가는 말로 얼버무리는 사례가 잦다.
이런 태도는 다른 주자들로부터 ‘대선후보가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힐러리 의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겨냥, “이라크전을 치르면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자신감 과잉’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힐러리 의원의 움직임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자 공화당은 집권당이면서도 당내 대선주자 경쟁이 마치 야당 경선처럼 홀대 받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 올해 상반기부터 30%대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대세론 형성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이 2위 그룹을 형성한 1강 3중의 구도 속에서 공화당의 핵심적 지지 기반인 보수층은 아직 선택을 못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힐러리 의원이 더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1월 3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부터 시작되는 당내 경선절차 초반의 성적표에 따라 공화당 후보의 구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은 힐러리 의원과 민주당의 위세에 눌린 공화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중도 성향인 마이클 블룸버그 현 뉴욕시장의 출마 가능성이 여전한 것도 공화당의 혼전 양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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