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지나친 참견정책이 선진국 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했다는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언론 보도를 읽는 순간 평소 나와 전혀 입장을 달리해온 전경련이 이처럼 나와 입장이 같을 때도 다 있는가 싶어 무릎을 쳤다.
우선 노무현 정부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진국과 달리 낡은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유지해 남의 사상에 쓸데없이 참견하고 처벌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지나친 참견정책이 선진국 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미 간의 무역 등 경제활동을 기업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지, 왜 정부가 나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밀어붙여 참견을 하고 난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아가 국내도 아니고 저 먼 이라크까지 군대를 보내 참견을 하는 것인지 정말 한심하다.
● 전경련의 '참견정책' 비판
노무현 정부만이 아니다. 잘 나가고 있다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설로 요즘 갑자기 위기에 처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아니 기업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 둘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한반도 대운하를 파겠다고 간섭을 하고 난리인가?
내가 비꼬아 이야기한 것일뿐, 전경련은 노무현 정부의 지나친 참견정책이 문제라고 비판의 칼을 세우면서도 국가보안법, 한미FTA, 이라크 파병 등은 전혀 지나친 참견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박수를 쳐 환영하고 있다. 이들이 의미하는 참견정책이란 자기들에 대한 규제 등 자신들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활동만을 의미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참견이란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끼어 들어 아는 체하거나 간섭함'을 의미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정부와 관련 없는 일이란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참견정책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지나친 참견정책이라는 문제의식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정부의 정당한 활동이고 무엇이 정당하지 않은 지나친 참견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노무현 정부 식의 지나친 참견주의를 극복하고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작은 정부는 신화에 불과하다. 전경련은 국가가 사상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한미FTA도 추진하지 않고, 이라크 파병도 안하고, 한반도 대운하도 추진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강력히 집행하고 한미FTA도 강력히 추진하고 이라크에도 파병하는 '큰 정부'를 바란다.
역사적으로 작은 정부를 주장한 레이건, 대처 정부도 복지예산 등 민생부분은 축소했지만 국방예산은 대폭 늘리고 범죄와의 전쟁이라며 경찰력을 확대했다. 결국 문제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하는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정부가 어느 기능을 수행하느냐는 기능과 관련해 어떤 정부(신자유주의국가, 복지국가 등)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전경련은 이 보고서에서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부관련 부처를 재정, 산업정책, 인적자원, 사회복지, 사회간접자본 및 환경이라는 5개 부문으로 축소해 통폐합하고 공무원 수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다시 한번 비꼬자면, 정말 박수를 쳐서 환영하고 싶은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이다.
● 작은 정부론 크기문제 아니다
이 안에 따르면 정치학에서 억압적 국가장치라고 부르는 군대, 경찰 등은 5개 부문 어디에도 없으니 해체해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군대 등 억압적 국가장치를 축소해 그 예산을 교육, 복지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전경련처럼 파격적인 주장은 해본 적은 없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군대까지 해체하라,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고, 전경련 만만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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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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