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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건청궁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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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건청궁의 아리아

입력
2007.11.05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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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의 시 <봉황수> 는 역사적 우수를 느끼게 한다. 경복궁 안에 최근 복원된 건청궁에 어울리는 산문시이기도 하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던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던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 일본은 1895년 8월 20일 새벽 칼잡이 낭인들을 건청궁에 침입시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주검을 불태우는 국제적 만행을 저질렀다. 황후가 청이나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제의 침략야욕을 봉쇄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히로시마 지역 칼잡이 48명은 만행 후 '증거 불충분'으로 전원 석방되었다.

7일 건청궁 내 장안당 대청마루 앞에서 뮤지컬 <명성황후> 의 아리아 두 곡이 울려 퍼진다. 명성황후 역을 맡았던 이태원은 <어둔 밤을 비춰다오> 를, 훈련대장 역의 이필승은 <그대는 나의 운명> 을 부른다.

▦ 건청궁 복원을 기념하는 이 행사 <명성황후의 숨결을 찾아서-건청궁에서 홍릉까지> 에서는 별도의 무대장치는 없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4종의 악기가 반주를 맡는다. 정작 특별한 것은 초대되는 일본 손님들이다.

황후를 시해한 낭인 중의 한 명인 구니토모 시게아키의 외손자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등 일본인 6명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 모임은 시해 사건을 반성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히로시마 지역 전ㆍ현직 교사들로 구성되었다.

▦ 이 모임은 그 동안 자객 후손 14명을 확인하고, 시해에 사용된 칼 두 자루를 찾아내기도 했다. 시해범의 후손과 이 모임은 2005년에도 복원 전의 건청궁을 찾아 조상 대신 사죄했다. 그들은 당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서 좋은 곳에 가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국제 간에도 기쁜 역사는 기쁜 일로 확대 재생산되고, 악하고 슬픈 역사는 후손들에게도 비극적 유산을 남긴다. 아름다운 건천궁 복원이 주는 또 하나의 인과응보적 교훈이기도 하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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