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득(54) 한국노총 위원장은 “고용지원 사업에서 정부는 후원자로 머물러야 하며, 주연은 노사 등 민간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용지원 사업들을 과감히 민간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고용지원 사업 현장에 가 보면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정부 주도의 고용 정책에 상당한 불신을 나타냈다.
매년 12개 중앙 부처에서 고용지원 사업 지원금 명목으로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내는 돈은 약 5,400억원. 그러나 이 자금 중 대부분이 제대로 지역 일자리를 만드는데 쓰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지원금의 상당액은 회의비나 노사단합체육대회, 해외연수비용 등 일자리 만들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곳에 낭비되고 있다”며 “12개 부처에서 중구난방식으로 지원금을 찔끔찔끔 나눠 주다 보니 각 지역의 고용지원 사업이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관(官) 주도의 고용 지원 사업의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각 부처의 고용 지원금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주최한 실버취업박람회의 초라한 성적표를 꺼내 보였다. 정부는 지난해 노령층 취업을 돕기 위해 4억원을 들여 14차례나 실버취업박람회를 개최했지만 취업률은 고작 1.9%에 그쳤다.
이 위원장은 정부와 민간의 효율성을 극명하게 대비할 수 있는 사례로 노동부 산하의 고용지원센터와 노사발전재단의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를 들었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지원센터의 지난해 취업률은 25%인 반면, 재취업지원센터는 47%를 기록했다.
이 위원장은 “노동부는 고용지원센터에 우수한 직업상담인력을 많이 배치해 놓고도 이들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했고, 오히려 민간인으로 들어온 이들을 공무원으로 전환해주는 등 조직 몸집 불리기에만 신경 썼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의 고용지원 사업을 넘겨받을 노사단체로 올 봄에 출범한 노사발전재단을 꼽았다. 한국노총과 경총이 중심이 돼 올 봄에 출범한 노사발전재단은 ▦노동복지사업의 확대 ▦지역 및 업종 맞춤형 직업훈련 ▦고용안정사업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고용 등 노사문제는 정부가 아닌 노사가 스스로 풀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이 위원장은 노조의 역할도 강조했다. “싸움만 안 하는 게 좋은 노조가 아니라, 고용 등 노사문제 등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있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인들은 중ㆍ고령자 재취업 문제를 대할 때 어떻게 하면 비정규직을 많이 쓰고 인건비를 줄일까를 고민한다”며 “이윤을 남기는 게 기업의 속성이지만, 이윤 획득 이전에 사람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ㆍ고령자 재취업 문제를 기업의 이윤 차원에서만 접근해 방치할 경우, 이들의 실업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업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등에서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중ㆍ고령자의 재취업이 더 쉬워진다고 주장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과 성과 위주로 돈을 받는 임금시스템이 되면 기업이 중ㆍ고령자를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채용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임금체계 개편과 중ㆍ고령자 재취업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ㆍ고령자에 대한 직무급을 도입한다면 이들은 몇몇 저임금 직무 그룹에서만 일하게 돼 고용의 질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재계는 ‘노조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기 위해 반대하고 있어 임금체계를 바꾸기 힘들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오해”라며 “기업들이 직무급을 도입하기 힘든 원인은 직무 평가를 위한 객관적 기준 마련의 어려움 등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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