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희는 강원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주민입니다. 한적한 우리 동네에 요즘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닷가의 횟집촌처럼, 우리 마을에 한우촌이 형성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주민 800명 남짓인 이 시골 마을에 요즘 주중에는 1,500~2,000명, 주말에는 4,000명 정도가 다녀갑니다. 맛있고 값싼 한우를 사먹는 관광객 덕분에 마을 경제가 살아나고 인구도 늘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한우촌 조성 아이디어는 이 마을 출신 사업가 최계경(43)씨의 머리에서 나왔다. 고교 졸업 후 서울 독산동 정육점에서 일을 배우고, 돼지고기 프랜차이즈 계경목장을 창업해 업계 최대 규모로 키운 인물이다.
“이쪽 일을 해서 그런지, 어느날 7, 8단계나 되는 한우의 유통 과정을 줄이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계속 하자, 정육점에서 한우를 구입해 가까운 음식점에서 구워먹는 한우촌 조성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운영하면, 주민들의 소모적인 경쟁을 막고 상부상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구상을 좀 더 구체화한 뒤 5일장이 서는 주천의 음식점 주인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동참을 권했다. 주민들은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고기가 싸면 거리가 멀어도 도시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설득했다. 결국 식당 다섯 집이 동참하기로 했다. 한우촌의 이름은 100% 한우라는 뜻에서 ‘다하누’로 정했다.
개업을 앞두고는 홍보에 주력했다. 취지에 공감한 마을 어른 33명이 한복 차림으로 서울역에서 태극기를 들고 ‘한우독립선언’을 외치고 마을을 방문해달라고 했다. 광복절을 일주일 앞둔 금년도 8월9일이었는데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이 여러 일간지에 게재됐다.
적극적인 홍보 덕분인지 한우촌이 문을 연 8월 11일, 한우를 먹기 위해 찾아온 차량으로 마을은 삽시간에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정육점에도, 음식점에도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우 식당을 운영하는 김순덕(48ㆍ여)씨는 그날 하루에만 평소 매출의 10배인 100만원을 벌었다. 그는 지금 매장을 늘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늦게 사업에 뛰어든 주민도 많다. 농사를 짓던 박준철(29)씨는 어느날 우연히 장모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가 대박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뒤늦게 식당을 차렸다. 젊은 감각에 타고난 미소까지 갖춰 지금은 한우촌에서도 최고의 매상을 올린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며 두부 가게에서부터 간병인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는 문형자(45ㆍ여)씨는 8월 초 주천 친정집에 왔다가 조용한 시골 마을이 들썩이는 광경을 보고 식당을 차렸다. 황병탁(60)씨는 손님으로 왔다가 성공 가능성을 예감하고 고향인 울산을 떠나 아예 주천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이렇듯 외지인이 하나 둘 들어오니 시골 마을로는 드물게 인구까지 늘었다. 그 때문에 현재 마을에는 식당이 17개, 정육점은 3군데로 늘었으며 머리고기, 처녑, 간 등을 취급하는 전문 식당도 생겼다. 최 회장은 앞으로 식당을 60개까지 늘릴 생각이다.
현재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300g 기준 고기 가격은 황소 8,000원, 암소 1만4,000원이며 고기를 산 소비자는 가까운 음식점에서 약간의 돈을 내고 채소와 밥, 찌개 등을 곁들여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이처럼 한우로서는 파격적으로 값이 싼 것은 소를 고르고 도축하고 부위별로 나누고 식당에 내놓는 모든 과정을 주민들이 함으로써 유통 단계를 크게 축소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일어난 변화는 매우 많다. 쇠고기가 많이 팔리니 깻잎, 상추 등을 재배하는 농가 수입이 늘었다. 이들 채소는 한우촌의 운영 정신에 따라 공동 구매해 같은 가격으로 식당에 공급한다. 방문객이 늘면서 주말이면 여관에 빈 방 구하기가 어려워졌으며 한산하던 주유소도 기름 대기에 바쁘다.
정육점, 식당 등의 종사자들은 일을 마치고 회포를 풀기 위해 호프집을 찾는다. 덩달아 치킨집 배달도 늘었다.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대리운전 기사도 생겼다. 여느 도시보다 활기가 느껴진다.
최 씨는 “최근 이곳 한우촌의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여러 자치단체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미국 쇠고기 수입 압력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곳의 영업 방식이라면 경쟁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영월=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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