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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 푹 빠진 사회/ <下> 한국드라마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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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 푹 빠진 사회/ <下> 한국드라마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입력
2007.11.05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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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의 열렬한 팬이라면 조만간 일본 여행을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가 12월부터 일본 극장 체인인 ‘티조이’의 스크린 30곳에서 총 6개월에 걸쳐 상영되기 때문. 촬영 단계부터 일본 내 ‘욘사마’ 팬을 고려해 밀어붙인 마케팅 전략이 열매를 맺은 셈이다.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과학수사대(CSI)가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그려 시청자들 사이에 가장 ‘미드’를 닮은 드라마로 평가를 받는 MBC 드라마넷 <별순검> 은 방영이 끝나기도 전, 이미 베트남 수출이 결정됐다. 케이블 방송사의 드라마로서는 유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배우 주진모와 박지윤이 주연한 드라마 <비천무> 는 아예 중국에서 먼저 전파를 탄 후 내년이 되어서야 국내 시청자를 찾아간다.

공중파 방송사를 잡지 못해 국내 방영이 늦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국내 최초로 14부 전체를 미리 촬영하는 ‘사전 제작’을 도입해 그나마 해외에서 바람몰이를 먼저 하는 기회를 잡았다.

해외 시청자를 고려한 마케팅, 미드의 흥행코드 차용, 그리고 사전제작.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믿음이 미드 범람의 위기에 몰린 국내 드라마 업계에도 널리 퍼진 것일까. 천편일률적인 스토리와 멜로, 그리고 스타 연예인에 의존해 국내에서 경쟁하기 급급했던 드라마 제작자들이 요즘 들어 달라졌다. 미드 열풍이 수동적이며 방어에 급급하던 국내 드라마 업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 미드 전성시대, 위기는 기회

드라마업계에서는 해외 수출을 필수 사항으로 받아 들인다. 그래서 최소한의 흥행을 보장하는 ‘한국적인 정서’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있다.

<주몽> 을 제작한 초록뱀의 김기범 대표는 “ <주몽> 을 통해 역사적 자부심을 고취시켰고 40%가 넘는 시청률을 달성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동북공정 문제로 중국에 정식 수출할 길이 없었다”며 “앞으로는 수출할 수 없는 드라마는 만들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태왕사신기> 의 제작진도 “일본 수출을 전제하고 만든 드라마인만큼 자칫 매우 한국적으로 보일 소재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하는데 주력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격’은 거대 자본의 투입. 미드 열풍으로 기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시청자들 덕분에 드라마 제작에 대형 자본이 투자되고 있다. 배용준을 앞세워 일본수출을 모색한 <태왕사신기> 는 이를 미끼로 수백억 원의 제작비를 모았다. SBS <로비스트> 도 제작비 120억원 중 3분의 1을 신한은행에서 빌려오는 강수를 뒀다.

예전처럼 국내시장에서 다른 드라마들과 시청률 경쟁을 하는데 그칠 요량이었다면 자칫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 이와 같은 적극적인 자본모집은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자본 경쟁이 우리 드라마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CJ미디어 관계자는 “제리 브룩하이머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제작자가 편당 30억원의 돈을 쏟아 부어 만드는 CSI시리즈와 국산드라마가 경쟁을 벌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지금은 미드 열풍의 영향력을 평가하고 우리 드라마의 갈 길을 모색하는 학습의 기간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소재 빈곤’ 고질병 고칠 찬스

미드 열풍 덕분에 드라마 업계는 활기를 찾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우리 드라마의 고질병인 ‘소재 빈곤’과 ‘스토리의 부실’을 해결하지 않고선 미드의 강풍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 강화엔 콘텐츠의 변화가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MBC 드라마국 노도철 PD는 “그동안 반복된 틀에 박힌 남녀 주인공의 애정구도나 무분별한 스타 캐스팅은 드라마 산업의 발전을 저해했다”며 “한국도 미국 드라마처럼 스타 캐스팅보다는 참신한 스토리와 그에 걸 맞는 투자로 시청자를 모으고, 시즌제 등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영향력이 커지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선 해외 마케팅을 위한 포장과 대규모 자본의 투입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작품성이 있고 콘텐츠가 독특한 드라마를 사랑해주는 시청자의 풍토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미드가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고 볼거리가 많아서 인기를 얻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문화적인 다양성을 보이고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KBS의 <얼렁뚱땅 흥신소> 와 같은 드라마가 대작에 밀려 시청자에게 외면 당하는 풍토는 우선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미드에 푹 빠진 사회…국산드라마 입지 점점 축소

“미드를 보며 시청자의 눈높이는 높아졌지만, 현재 우리 제작여건에서 미드와 같은 완성도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본도 능력도 시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드가 제작에 있어서 자극은 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막아야 할 대상이라고 봅니다.”

한 드라마 프로듀서의 푸념이다. 전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치는 미드의 파급효과에 대한 고민이 짙게 배어나온다. 방송업계에서는 그나마 미드의 자극으로 드라마의 질이 높아지고 수출길이 넓어지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미드 열풍이 드라마업계엔 치명적인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막대한 자본력과 할리우드의 영화적 요소가 드라마와 결합한 ‘수퍼 콘텐츠’ 미드가 이미 전세계 드라마 시장을 장악했고, 이를 깨뜨리기엔 역량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박웅진 책임연구원은 “드라마 시장이 개방돼 외국 드라마 제작사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뛰어들면 명맥을 어렵게 유지해온 영세 프로그램 제작사(PP)들이 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PP업계에선 한 술 더 떠 한미FTA로 인해 외국의 투자가 급증하면 국내 드라마 시장은 완전히 미드에 장악 당하고 결국 미국 방송국의 ‘동남아 진출 거점’으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드의 영향으로 한국드라마의 외연이 커지는 것이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KBS 홍석구 프로듀서는 “미드는 영어로 제작되기 때문에 그 시장이 한글로 만들어지는 우리 드라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넓고 막대한 자본 투입의 여지도 크다”며 “미드의 영향을 받은 우리 드라마들이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지만 콘텐츠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실 설익은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드 편성이 오히려 드라마 제작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싼 값에 들여와 어느 정도 시청률을 보증하는 미드를 편성하는 게 제작비를 들여 미래가 불투명한 드라마를 자체 제작하는 것보다 낫다는 경영마인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중파 방송국의 한 드라마 프로듀서는 “공중파 방송국이 미드를 사는 가격은 편당 100~200만원 정도”라며 “싼 가격에 구입해서 어느 정도 시청률을 유지하면 굳이 편당 몇 천 만원, 몇 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드라마를 만들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동남아 국가에서 우리 드라마를 구입해 방송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미드가 생활 깊숙이 들어오면서 드라마에서 한국적 소재가 내몰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SBS 김영섭 프로듀서는 “미드의 영향으로 외연이 확장되면서 드라마 제작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노리고 만들다 보니 상업적으로 잘 팔리는 소재를 택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과 소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주요 케이블TV 채널에서 방영(혹은 예정) 중인 미드

채널CGV: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3> <본즈2> <특수수사대 svu 시즌8>

XTM: <트래블러> <키드냅> <더 리치스> <넘버스3>

OCN : <위기의 주부들 3> <라스베가스> <뉴욕특수수사대 5>

수퍼액션: <히어로즈>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룸>

스토리온: <블러드타이즈> <식스디그리즈>

온스타일: <스튜디오 60> <고스트 위스퍼러 시즌2> <클로스 투 홈> <섹스&시티 시즌4> <프렌즈 시즌6> <콜드케이스 시즌2>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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