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품질을 따라가지 못한다.'
요즘 현대자동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현대차의 현실과 한계를 이처럼 잘 압축한 표현은 더 없다고도 한다. 좋게 말해 현대차의 숙제는 이제 '브랜드'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정몽구 회장 취임 이래 품질경영에 주력해왔다. 강력한 품질경영 드라이브는 중저가 이미지를 탈색시키고, 세계자동차시장의 메이저그룹으로 부상하는데 기여했다. 덕분에 현대ㆍ기아차는 중소형차 모델에서 질주하듯 고품질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미국 자동차 품질평가기관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는 이를 확인하고 있다. 하위권에 맴돌던 현대차 순위는 작년에 고급 브랜드인 포르쉐와 렉서스에 이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수 언론들은 현대차의 품질향상을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 '지구는 평평하다(The Earth is Flat)'란 말에 비유하며 놀라워 했다.
현대ㆍ기아차는 여기에 글로벌 경영으로 성장동력을 삼았다. 미국의 GM 등 '빅3'가 공장폐쇄,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현대차는 일본업체보다도 활발히 해외 생산능력을 확충했다. 2010년까지는 연간 5%씩 생산능력 확대를 지속한다는 전략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ㆍ기아차는 '2%가 부족한' 한계를 점차 드러내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은 글로벌 업체들의 증설로 2009년까지 공급과잉이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만 해도 수요 초과는 무려 20%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겹치면서 미국시장에서 현대차 판매 신장세는 둔화하고, 현지공장은 가동 조정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중소형 저가차량에서 인지도를 높였지만 브랜드가 중요한 고급ㆍ대형차량에선 경쟁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ㆍ기아차는 글로벌 업체들에게 공급초과의 돌파구인 중국시장에서도 고전을 겪고 있다. 고유가, 원화 강세 등 대외환경 악화로 기존 전략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브랜드를 한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현대ㆍ기아차는 고급차 개발, 고객우선 경영 등 다양한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고급차의 경우 작년 10월 나온 호화레저용 차량(LUV) 베라크루즈를 시작으로 해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 등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을 다시 두드린다는 전략이다.
베라크루즈는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남미의 아즈텍 문명을 정복하기 위해 세운 도시 이름이란 점에서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현대ㆍ기아차는 연구개발, 생산, 판매, 정비 등 모든 경영활동에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고객 우선경영'을 펴고 있다. 양적 성장을 넘어서 전세계 고객들로부터 회사와 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이 패널로 참여하는 '오토 프로슈머', 차 업계 최초로 고객을 찾아가는 '비포 서비스(Before Service)',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을 세분화한 '고객 맞춤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지구촌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친 환경차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2020년에는 하이브리드차와 연료전지차를 포함한 친환경차량 판매가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 도요타 등 선두 메이커들은 친 환경 차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수소 연료전지 차인 콘셉트카 '아이 블루'를 공개했으나 경쟁기업들에 비해선 다소 발걸음이 늦은 상태다. 당장의 시장성을 감안하면 무모해 보이는 이 친 환경 차 개발에는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산은 불안한 노사관계다. 올해 10년만의 무분규 임ㆍ단협 타결에도 불구하고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하는 단서 조항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무분규 타결은 변화를 시작하는 '이정표'이지 종착역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노사화합이 생산성 향상과 고객신뢰로 이어진 사례는 해외가 아니라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차 전주공장 버스부문은 협상 10개월만인 지난 3월 버스부문 주야 2교대 근무에 합의한 뒤 상용부문의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
2교대 근무실시로 700여명이 신규 채용된 것은 물론, 생산ㆍ판매가 크게 늘어나 협상타결 3개월 뒤에는 중대형 버스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 미국 車업체에선
#1 미국 3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크라이슬러는 이 달 27일 근로자 해고와 관련한 극적인 노사 합의를 이끌어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산하 크라이슬러 노조원들은 이날 투표에서 생산직 노조원 56%의 찬성으로 근로자 해고를 수용했다.
#2 '자동차 공룡' GM은 최근 노사 단체 협상을 통해 UAW 노조원들의 시간당 인건비를 시간당 78.21 달러에서 25.65달러로 대폭 낮췄다. 이로써 GM의 연간 근로자 인건비가 2003년 184억 달러에서 2007년 101억 달러로 낮아져 경영부담을 덜었다.
미국의 자동차 3사가 고질적인 노사 문제를 털어내고 상생의 길로 나가고 있다. 이번 GM과 크라이슬러의 노사 합의 내용을 보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고민과 해법이 함께 녹아 있다. 더 이상 노조가 회사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는 절박감을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UAW가 주도해 향후 4년간 유효하게 된 GM의 노사 협상은 다른 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시 된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그간 업체들이 떠안았던 퇴직자 의료보험 비용을 UAW로 넘기기로 한 것이다.
GM은 이번 노사간 합의에 따라 사회보장 준비금으로 회계장부상 510억 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여유자금을 신기술 개발 등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빅3의 노사교섭은 포드만 남겨놓게 됐으나 지난해 126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던 만큼 GM과 크라이슬러의 합의내용을 토대로 파업 없이 협상을 종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노사 관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올해 10년 만에 간신히 무분규 임단협을 마무리했으나 내용상으로는 순탄치 못했다.
올해 초 '성과금 투쟁'에 이어, 6월에는 FTA 정치 파업 참가 등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무분규 임단협 타결은 이뤘지만 노사 관계에 있어 회사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는 단서 조항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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