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에리히 노삭 / 문학동네운명인가, 통속인가… 서늘한 연애소설
11월의 첫날이다. 벌써 11월인가…, 하다 이 서늘한 연애소설 <늦어도 11월에는> 이 떠오른다. ‘그가 곧장 나를 향해서 걸어왔다. 아주 천천히, 똑바로…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니, 내가 한 말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다른 말을 했다면 그것은 전부 거짓이었다. 나는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늦어도>
이렇게 회상하는 주인공 마리안네는 죽은 여자다. 마리안네가 이야기하는 죽기 전 7개월이 <늦어도 11월에는> 의 줄거리다. 거부의 사업가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둔 28세 마리안네는 5월 어느날 남편 대신 참석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34세의 냉소적 작가 베르톨트를 만난다. 늦어도>
그가 다가왔을 때를 마리안네는 “그 일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운명적으로 마련되어 있던 일”이라고 회상한다. 그 길로 집으로 찾아온 베르톨트를 따라 마리안네는 무작정 집을 나선다. 두 사람의 불안안 도피생활, 베르톨트는 11월에 무대에 올릴 희곡을 쓰면서 무슨 일이든 “늦어도 11월에는” 해결되지 않겠냐고 되뇌인다. 헤어짐과 다시 만남을 겪은 그들, 하지만 우박이 섞인 비가 내리는 11월 밤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그야말로 통속적인 줄거리의 연애소설로 치부될 법하다. 하지만 죽은 마리온의 시점에서 본 섬세한 심리 묘사, 삶의 공허함과 사랑에 대한 갈구를 강렬한 비극에 담은 이야기 구조는 읽는 이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사르트르가 “전후 독일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가장 탁월한 작가”라고 격찬했다는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1901~1977)은 1955년 발표한 이 소설로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그 뷔히너 상을 받았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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