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1시52분. 902원 선에서 공방을 거듭하던 원ㆍ달러 환율이 순식간에 900원 아래로 밀렸다. 외환딜링 룸 모니터에 찍힌 환율은 899.60원. 사실상 ‘환율 800원대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장 마감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가량. 이 때부터는 팔자 세력과 개입에 나선 당국과의 줄다리기였다. 당국이 개입강도를 높이면서 902원 선까지 회복했던 환율은 결국 쏟아지는 매물을 견디지 못하고 900원대에 겨우 턱걸이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30원 급락하며 900.70원에 마감했다. 1997년 8월26일 900.50원을 기록한 이후 10년2개월 만의 최저치다. 당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900원 붕괴는 확실했다.
최근의 급격한 환율 하락세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달러 약세 기조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달러화 대비 각국의 통화 가치는 연일 치솟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유로화 대비 환율이 한때 1.4444달러까지 솟구쳤고, 영국 파운드화 대비 환율도 2.07달러까지 뛰었다.
국내적으로도 달러 공급 우위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대규모로 쏟아내고 있고, 국내증시 호황도 달러유입을 부추기고 있다. 심리적 요인도 크다. 외환은행 원정환 대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수급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훨씬 커 보인다”고 말했다.
고비는 1일 새벽이다.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결정과 향후 정책방향을 담은 발표문(Statement) 내용에 따라 환율향방이 가늠될 수 있다.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0.25%포인트 인하)이라면, 이미 글로벌 시장에 충분히 반영된 만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제는 금리 인하 폭이 0.5%포인트에 달하거나 혹은 공격적 추가금리인하를 시사하는 발표문이 나올 경우다. 신한은행 김장욱 과장은 “만약 미국이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경우 환율 하락 압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로 동결인 경우에는 오늘 경험한 899.60원이 단기 저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환율 800대 안착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800원대 가격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추가로 달러매물이 대량으로 나오기 쉽지 않아 보이는 데다, 당국의 개입의지도 확인됐기 때문이다. 900원을 전후로 한 공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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