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벌총수의 자택 수색이 진행되던 5월 1일. 신경을 곤두세운 채 김 회장의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과학수사팀 사이로 한 수사관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취재진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40대로 보이는 생머리의 여성 수사관. 이후 그는 네티즌들에게 유명인사가 됐다. 미국 드라마 < CSI 라스베가스 >의 여 수사관 캐서린 월로우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게 그 이유다.
미국 드라마. 일명 ‘미드’의 열풍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1년 8월 < CSI 라스베가스 > 시즌1이 국내 케이블 방송을 통해 처음 소개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미드의 인기는 케이블TV 채널의 편성확대와 인터넷 사용인구 증가에 힘입어 전 사회적인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한 ‘미드 폐인’은 얼마 전 경찰서에 머리카락 한 가닥을 들고 찾아와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가져왔으니 분석해달라”는 터무니없는 민원을 제기해 실소를 자아냈다.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 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에게는 ‘석호필’이라는 한국이름이 붙여졌고, 기업들은 앞다퉈 그에게 광고 모델을 요청했다. 프리즌>
현재 케이블TV사와 지상파 방송국에서 방영 중인 미드는 40여 편. 동영상 파일을 통해 접근이 가능한 미드는 줄잡아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드를 보기위해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가 불티나게 팔리고, 파일럿 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위해 미국 방송사 홈페이지 접속률이 부쩍 높아졌다. 미 현지에서 방송된 드라마는 불과 1~2시간이면 한글자막을 붙인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정도다.
본보가 G마켓과 함께 최근 네티즌 2,435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미국 드라마 열풍’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35%가 미드에 푹 빠져있다고 응답했다. 또 67.1%는 “미드를 지상파 방송 외의 수단(케이블TV, 동영상파일)을 통해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미드 열풍에 대해 자본력에서 뒤처지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 자칫 미드 열풍에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는 현상이 우려된다는 지적과 함께 국내 드라마 산업을 자극하는 촉매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천편일률적인 우리 드라마들에 물린 시청자가 완성도 높은 미드에 끌리고 있다”며 “하지만 미드 인기의 영향은 단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김영섭 SBS 프로듀서는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미드가 들어오면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사라지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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