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바둑계에 ‘이세돌 시대’가 활짝 열렸다. 6관왕 이세돌이 국내 최대 타이틀인 명인까지 따내 7관왕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제1인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명인전이 34기를 거쳐 오면서 수많은 강자들이 명인성을 정복키 위해 도전했지만 성공한 것은 조남철 김인 서봉수 조훈현 이창호 등 겨우 다섯 명 뿐. 모두 당대의 제1인자들이었다. 이제 이세돌이 새로운 세대의 제1인자로 그 뒤를 이은 것이다.
한국 바둑계의 제1인자 계보는 대체로 10년 터울로 이어진다. 기풍 면에서는 실리와 두터움이 반복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이런 점에서 조남철 - 김인 - 조훈현 - 이창호의 뒤를 이세돌이 잇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더욱이 올해부터 명인전 우승 상금이 1억원으로 증액되면서 국내 최대 기전으로 탈바꿈한 첫 해에 이세돌이 새 명인에 오른 것은 어쩌면 역사성 필연성까지 느끼게 한다.
이세돌은 1983년 서해의 작은 섬 비금도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5단 정도의 실력이던 아버지 이수오씨(1998년 타계)는 당시 섬마을 주민으로서는 특이하게 3남2녀에게 바둑을 열심히 가르쳤다.
이 가운데 기재가 뛰어난 두 아들을 모두 프로기사로 만들었다. 큰 아들 상훈이 먼저 서울에 올라와 프로에 입문했고 막내 세돌도 곧 그 뒤를 이었다. 1995년 만12살4개월의 입단으로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국내 최연소 입단 3위 기록이다.
그러나 입단 이후 이세돌은 한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연속 70%대의 높은 승률을 올리기는 했지만 아직 정상까지 오르기에는 미흡했다. 수읽기가 빠르고 파괴력도 대단했지만 실수가 잦았고, 전반적으로 착수가 거칠었다. 게다가 이즈음 박영훈 최철한 원성진 등 후배 유망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바둑계의 시선도 자연히 그 쪽으로 쏠렸다.
프로 입단 6년째인 2000년. 새해 벽두부터 이세돌의 대질주가 시작됐다. 무려 5개월간에 걸쳐 32연승을 거두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자신의 생애 첫 타이틀을 따냈고 배달왕기전까지 우승, 2관왕이 됐다. 연말에는 이창호를 제치고 최우수기사에 선정됐다. 드디어 공식적인 국내 최고 기사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창호가 건재했고 최철한 박영훈도 나름대로 지분을 가지고 팽팽히 버텼다. 진정한 1인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걸려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이세돌을 돕고 있다. 20대 초반으로 원기와 패기의 화신이던 이세돌의 바둑엔 이제 유연성까지 접목되었고 이세돌이 타이틀 접수를 시작한 작년부터 이창호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2003년 이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중단되었던 명인전이 2006년 강원랜드와 손을 잡고 총규모 7억원, 우승 상금 1억원의 국내 최대기전으로 탈바꿈했다. 타고난 승부사 이세돌의 투혼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주 좋은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세돌이 그동안 국내외 타이틀을 여럿 따냈지만 국수 명인 등 전통 있는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창호의 부진은 이세돌에게는 외려 축복이었다. 명인전 본선에서 올해 처음 열린 이창호와의 맞대결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단독 선두로 나섰고 결국 마지막 한 경기를 남기고 1위를 굳혀서 결승 진출이 확정됐다.
결승 상대는 그동안 주요한 경기에서 번번이 자신의 발목을 잡아 왔던 입단 동기 조한승. 하지만 이세돌은 3대0 스트레이트로 가볍게 조한승을 제압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새 명인이 탄생한 것이다.
■ 시간대 별 승부의 현장
이날 바둑은 초반부터 이세돌의 흐름이었다. 흑을 잡은 이세돌이 초반에 변형 중국식 포진을 펼친 다음 이를 삭감하러 들어온 백돌에 맹공을 펼쳤다. 그러나 조한승도 이에 대해 응수를 잘 해서 서로 두어 볼 만한 형세였는데 백의 상변 삭감이 너무 깊어서 흑의 공격을 받아 엷어지면서 흑이 실리에서 앞서 나갔다. 이후 중앙 처리에서도 조한승에게서 계속 느슨한 수가 나와 흑의 우세로 기울었다. 결승3국의 진행 상황을 시간대별로 소개한다.
<오전 11시>오전>
대국이 시작됐다. 흑을 잡은 이세돌 9단이 변형 중국식 포진을 들고 나왔다. 백이 우하귀 삭감을 시작하자 흑의 맹공이 시작됐다. 초반부터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낮 12시>낮>
흐름이 무척 빠르다. 매우 어려운 장면인데 두 선수 모두 빠른 속도로 착수하며 후반을 대비하고 있다. 해설자 윤현석 9단은 실리는 흑이 좋지만 하변 뒷맛이 고약하고 상변에도 흑이 엷은 구석이 있어 팽팽한 형세라 말했다.
<오후 1시>오후>
흑백 모두 중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세돌은 지속적인 공격을 통해 중앙 모양을 깔끔하게 정리狗?하지만 조한승 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서로 어려운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다. 검토실에서는 백이 하변에서 흑의 약점을 노리는 수단이 있어서 괜찮아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후 3시>오후>
오후 2시부터 대국이 속개됐다. 이세돌이 조한승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실리의 우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조한승이 하변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바둑이 나빠졌다. 백이 약간 두텁기는 하지만 집이 부족하다. 조한승이 어려운 형세다.
<오후 4시>오후>
이세돌의 승리가 거의 결정적이다. 검토실에서는 이미 이세돌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이 더 이상 실리 차이를 만회할 수 없다고 한다. 새로운 명인의 등극이 코앞에 있다.
<오후 4시24분>오후>
조한승이 결국 돌을 거뒀다. 183수끝, 흑불계승.
박영철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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