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2중…단일화가 변수.’(2002년) ‘3자구도…세몰이 본격화.’(1997년)
5, 10년 전 이맘때 한국일보 1면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이렇게 보도했다.
2002년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33.8%,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22.7%,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20.8%였다. 97년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39.9%,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32.3%,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15.7%였다.
세월이 흘러 역시 대선을 50일 남겨뒀다. 하지만 지금은 딱 부러진 대선구도 조차 없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지지도 50% 이상을 기록하며 전례 없는 고공 비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지지도는 10%대 후반, 문국현 후보는 8~9%,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4%대,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3%대다.
3명의 유력 후보가 치열한 키재기 경쟁을 펼쳤던 97년이나 2002년과 비교하면 뭐라고 딱히 대결 구도를 정의하기도 힘들다.
여기에다 수면 위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소문만 무성한 이들도 아직 있다. 대선을 50일밖에 남겨두지 않았는데 아직 안개 속 후보가 있는 셈이다. 이회창 전 총재가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 중이다.
출마하면 14%대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고건 전 총리 추대설도 범여권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굳이 정의하자면 ‘1강 1중 다약(多弱)’구도다. 때문에 “이번 대선이야 말로 전례 없이 어지럽고 혼란스런 양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2년엔 대선 50일을 앞두고 여당 노무현 후보와 제3후보(정몽준)의 단일화 성사에 대한 압박이 많았다. 단일화 성사 여부에 정치권의 촉각이 곤두 서 있던 시점이다. 지지도가 엇비슷하고, 합치면 이긴다는 전망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97년의 경우 이른바 DJP연합이 이맘때 출범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세력 간 연합 움직임이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 정동영 후보와 제3 후보(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단일화 요구는 예전과 비교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2년엔 여당(민주당)이 경선 후유증으로 탈당 사태가 잇따랐다. 97년엔 여당인 신한국당 경선 후유증으로 이인제 후보가 탈당해 국민신당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경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
물론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대목도 있다. 여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다른 한편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2002년 민주당 노 후보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그랬고, 97년 이회창 후보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랬다. 지금도 정 후보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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