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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 푹 빠진 사회/ <上> 일상으로 들어온 미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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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 푹 빠진 사회/ <上> 일상으로 들어온 미국 드라마

입력
2007.10.3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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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DVD나 동영상 파일을 쌓아놓고 마우스를 굴리며 온종일 즐긴다는 뜻의 신조어 ‘마우스 포테이토(Mouse Potato)’ 로 자신을 소개하고 어떤 과학수사라도 3일 안에 해결될 것으로 단정하는 ‘CSI 신드롬’에 시달리며 <그레이 아나토미> 팬클럽에서 자체 제작한 드라마 로고가 찍힌 커피 컵을 소유한 사람들의 집단.

일명 ‘미드 폐인’들. 조금은 ‘오다쿠’에 가까운 별종처럼 보이지만 ‘미드족’은 의외로 보편화되어 있고 그만큼 미국 드라마는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 번성하는 ‘마우스 포테이토’들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신이 미드에 푹 빠져 있다고 답변한 비율, 다시 말해 스스로 ‘미드 폐인’이라 털어놓은 응답자는 무려 34.6%(841명)에 달했다. 눈길을 잡아 끄는 드라마 한 편을 우연히 본 것이 아니라 보통 20편이 넘는 한 시즌 전 편을 두 차례 이상 본 경우도 44.5%에 달해 이미 상당수의 시청자가 미드를 정기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드의 열풍은 지난해 <프리즌 브레이크> 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가 ‘석호필’이라는 애칭을 얻고 국내 대기업의 광고모델로 등장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이 열풍은 침체에 빠져있던 국내 드라마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블록버스터 작품의 탄생을 부추겼으며 회원 수 12만 명의 대형 미드 인터넷 클럽 ‘드라마 24’와 20만 명의 <프리즌 브레이크> 팬 클럽을 육성하는 토양을 마련했다.

미드 인기의 상승 곡선은 드라마 수입량의 변화를 통해서도 그려 볼 수 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방송 프로그램 수입 물량 중 드라마의 비중이 55.3%로 지난해 전체 점유율 1위였던 영화를 따돌렸다. KBI측은 “케이블, 위성TV업체들이 드라마 수입량을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미드는 단순히 오락의 도구로 멈추지 않고 훌륭한 영어교육 콘텐츠로 활용되기도 한다. 에스더 임 YBM 어학원 강사는 “미국 드라마는 뉴스 프로그램과 더불어 좋은 어학 교재로 쓰이고 있으며 친근한 소재인 덕에 점차 미드를 적용한 강좌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학과 강보라씨는 미드 열풍에 대해 “과거에 비해 외국에 나가는 일이 잦은 20~30대 문화 수요자들은 미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동떨어지지 않고 동일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섹스 앤 더 시티> 를 보며 브런치(Brunch) 문화를 받아들이고 배우의 스타일을 쉽게 취사선택한다”고 분석했다.

■ 무시할 수 없는 홀드백의 축소

사실 미드의 열풍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80년대부터 <600만 불의 사나이>, <맥가이버> , 등에 박수를 보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당시에는 케이블TV가 없어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미드의 시청률은 보통 두자릿수를 넘었다)에게 요즘의 미드 인기는 색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미드 열풍과 지금의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 우선 홀드백(Hold backㆍ사전적 의미는 지상파 방송 이후 케이블 방송까지 걸리는 시간.

미국 방송 이후 국내 방송 혹은 인터넷 파일로 시청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뜻하기도 함)이 거의 사라졌다. 미드의 국내 방영 시점이 미국에서의 방영 시점보다 많이 늦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튜더스:천년의 스캔들> 의 경우처럼 국내 케이블 TV가 미국에서 본 방송이 종영됨과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하거나 인터넷 동영상 파일 유통의 보편화 때문에 거의‘실시간’ 미국 드라마 시청이 가능해졌다.

이렇듯 홀드백이 짧아지면서 ‘얼리 어답터(Early adapter)’성향이 강한 젊은 문화 소비자들은 미드를 더욱 매력적인 콘텐츠로 받아들인다.

CJ미디어 관계자는 “지금의 미드는 시청자들에게 거의 미국 방송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전달되고 있다. 드라마가 담고 있는 의미와, 예를 들어 출연자들이 입는 옷 스타일을 비롯해 각종 미국 트렌드 등 여러 ‘정보’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대중 속으로 파고 든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찬 한국외대 언론학부 교수는 “세대별로 선택하는 미디어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에 홀드백을 지금의 보편적인 미드 열풍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요인으로 규정하기 힘들다”며 “무엇보다 미드 열풍은 고품격 드라마에 대한 우리 시청자들의 욕구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미드 불법동영상 한글자막 메이커 수준높은 익명작업가 100~200명 추산

동영상파일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유통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끊임없이 '미드 폐인'에게 공급하기 위한 불법 동영상의 한글자막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나 직업을 철저히 숨김 채 움직인다. '미드'관련 인터넷 사이트 동호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룹, 혹은 단독으로 자막을 만든다. 오직 아이디(ID)나 별칭을 자막에 삽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명성을 내세운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면서 가상세계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날을 기다리듯, 그들은 웅크린 채 법의 테두리를 넘나든다.

대학생으로 D인터넷 사이트에서 단독으로 활동한다고 밝힌 J씨는 "좋아하는 드라마의 자막을 직접 만들어 여러 사람과 나눈다는 것은 대가가 없더라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실력을 끌어올리려고 자막 만들기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는데 실제로 미드를 자막 없이 계속 보면서 듣기 능력이 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26세 무직의 K씨는 "자막을 만드는 사람 중에 원어민처럼 영어가 유창한 교민, 유학생, 영어 강사 등도 많이 있지만 사전과 인터넷의 도움을 받으면 누구나 자막을 만들 수 있어 영어실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막 메이커'들은 주로 대용량 이메일 서비스가 가능한 해외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원 자료를 구한다. 동영상을 손에 넣은 후 대부분 중국인들이 만들어 미리 배포해놓은 영어자막을 얻어 이를 한글로 번역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부 원 방송국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크립트를 구하기도 하지만 빈도가 낮다.

J씨는 "일명 '기차'라고 부르는 대용량 이메일 지원 사이트에서 동영상 파일을 구해 메일로 보내고 그 주소를 링크해 활동하는 동호회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며 "이 방법을 쓰면 미 현지 방송 1~2시간 뒤에 동영상을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미드 자막 중 실제로 '쓸 만한 것'을 계속 공급하고 있는 사람은 100~200여 명으로 추산된다. K씨는 "자막을 만드는 단체는 하루아침에 생겼다 없어지기를 되풀이 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 규모를 알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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