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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펀드창구는 여전히 "묻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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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펀드창구는 여전히 "묻지마"

입력
2007.10.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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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구 1펀드 시대. 펀드 수익률 100%.'

요즘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홍보 문구들이다. 실제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펀드 계좌 수는 1,588만개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수(1,599만)에 육박했고, 중국 펀드의 1년 수익률도 100%를 훌쩍 넘어섰다. 이러다 보니 '묻지마 투자'도 횡행하고 있다.

이럴수록 투자의 길라잡이인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펀드 판매사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특히 4명 중 3명이 적립식펀드에 가입하는 창구인 은행은 더욱 그렇다.

판매사가 펀드 운용사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판매사들이 '1가구 1펀드 시대'에 걸맞게 올바른 투자를 유도하기보다는 판매에만 열을 올린다는 불만의 소리들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한국일보 증권팀은 펀드 판매창구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들에게서 '판매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 10가지'를 넘겨받아 서울 명동의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등 5개 은행 지점을 둘러봤다.

결과는 낙제점이었다. 10개 기본사항을 모두 지킨 은행은 한 곳도 없었고, 심지어 "그런 것도 제대로 모르느냐"며 고객에게 무안을 주는 곳도 있었다. 각 은행별로 지점 한 곳만 조사했기에 은행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한다.

● 뜬 구름 잡는 수익률 자랑만 난무

국내 펀드 판매 1위사인 A은행 명동지점. 우선 일반 창구에서 펀드 판매까지 맡고 있어 차분한 상담이 불가능했다. 옆에서 들려오는 직원과 손님의 대화 탓에 상담직원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펀드에 대해 잘 모르는데 설명 좀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어떤 펀드를 들지 미리 결정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되레 짜증을 냈다.

직원은 이어 "요즘 이 상품들의 수익률이 좋으니 참고하라"며 미래에셋인디펜던스, 마이더스블루칩 배당주, 차이나, 브릭스 펀드를 추천했다. 주식편입 비중에 따라 주식형, 채권형, 혼합형 등 세 가지 종류의 펀드가 있다는 기본지식조차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

수익률의 경우 같은 유형의 펀드들과 견줘봐야 하는데도 무작정 "수익률이 좋다"는 말만 되풀이 됐다. 더욱이 자산운용사를 설명할 때는 "미래에셋은 유명하니까 잘 아시죠"라는 정도였고, 국내 자산운용사인 마이더스자산운용을 해외 자산운용사라고 잘못 소개하기도 했다.

뜬 구름 잡는 수익률 자랑만 늘어놓기는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공히 "요즘 이 상품이 가장 잘 나간다"며 높은 수익률만 내세웠다. B은행이 유일하게 "사람들이 많이 드는 상품보다는 자신의 투자성향에 맞는 펀드를 드는 게 좋다"고 권했다.

● 펀드 설명은 없고, 계열사 펀드 밀기 여전

펀드 설명에도 인색했다. C은행의 경우 계열사 펀드만 달랑 추천하면서도 구체적인 설명 없이 상품 소개서만 건넸다.

은행 한곳을 제외하곤 같은 계열의 자산운용사 상품을 미는 행태도 여전했다. D은행은 6개 추천 상품 중 자회사의 특정 펀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권했고, C은행은 추천 펀드 2개 모두 소속 자산운용사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E은행이 추천한 5개 해외 펀드 중에는 무려 4개가 계열사에서 출시한 상품이었다.

그나마 우리, 신한, 기업은행 정도가 펀드의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며 적립식은 매입 단가를 떨어뜨리는 장점이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메리츠증권 박현철 펀드애널리스트는 "이왕이면 투자상품이 다양하고 계열사와 이해관계가 적은 판매사에서 추천하는 상품을 고르는 게 좋다"며 "투자계획이나 여건을 자세히 묻지 않고 펀드의 장점과 수익률만 강조하는 직원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 심혜이 인턴기자(중앙대 정치외교학 3년)

■ 적립식 1200만개…주식형이 95%

펀드는 투자 방법에 따라 적립식(차곡차곡 더해가는)과 임의식(한 번에 맡기는), 투자 대상에 따라 주식형 채권형 부동산형 등으로 나뉜다. 이 중 '간접 및 장기투자'를 대표하는 것이 적립식 주식형펀드이다. 일반 투자자에게 친숙한 만큼, 전체 펀드 내 비중도 가장 높다.

적립식 주식형펀드의 계좌 수는 올해 9월 말로 1,000만개를 넘어섰다. 1명이 여러 개 펀드에 가입한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이제 가구당(4인 가족 기준) 1개씩은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 시대를 맞은 셈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전체 적립식펀드의 계좌 수는 1,215만개(설정액 43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주식형펀드가 계좌 수(1,042만개ㆍ83.8%)나 금액(34조7,000억원ㆍ80.1%) 면에서 모두 절대적이다.

특히 5월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급등하면서 그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9월 한달간 적립식펀드 증가액의 95% 이상이 주식형이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판매사 중에는 은행 비중이 절대적이다. 은행권의 적립식펀드 판매잔액 비중은 9월 말 현재 75.72%로, 증권사(23.66%)나 보험사(0.61%)와 격차가 큰 편이다. 국민은행(9조220억원), 신한은행(6조8,804억원), 하나은행(4조7,669억원) 상위 3개사가 전체 판매액의 절반 가량(47.6%)을 점하고 있다.

운용사의 경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적립식펀드 판매잔액(12조3,064억원)이 2,3위인 한국투신운용(4조830억원), 신한BNP파리바투신(3조8,428억원)을 크게 앞서고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어떻게 됐죠?" 관심보이며 귀찮게 하면 대접해 준다

펀드 투자도 엄연한 투자다. '간접투자'라는 이유로 한 번 맡긴 뒤 수익률이 높아지기 만을 '기도'하는 자세로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맡긴 돈을 대신 굴려달라고 하는 만큼 모든 펀드에는 수수료가 붙는다. 현재 금융사들이 투자원금에서 떼는 수수료는 2% 정도로 만만치 않은 액수다.

이 중 판매사 몫(1.34%)이 운용사(0.76%)보다 훨씬 높다. 비싼 수수료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우선 투자자가 적극적이어야 한다.

대다수 판매사가 일단 펀드를 판 이후에는 고객들의 질문에 불친절하거나 모르쇠로 대응하고 있지만, 적어도 '별도의 펀드 창구와 담당자를 두도록 한' 금융감독당국의 지침을 근거로 담당 직원에게 귀찮을 정도로 자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펀드 판매자라면 고객이 가입한 펀드와 관련된 정보와 조언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올해 상반기 인기를 끈 일본펀드나 리츠펀드를 권유해 가입시켰더라도 하반기에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다면 고객에게 한 번쯤은 갈아타기를 권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비자의 권리는 가입 때부터 단단히 약속 받는 게 좋다. 가입 후에도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 다짐을 받아두는 것도 방법이다.

한 펀드애널리스트는 "펀드 가입 후 분쟁이 생겼거나 담당직원이 무관심할 경우 판매사 측에 담당자 교체를 요구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응법"이라고 조언했다.

흔히 3년 이상 장기투자를 권하는 펀드도 6개월마다 수익률을 점검해 리모델링 하는 게 좋다. 가입 펀드들을 수익률 별로 정리해 수익이 나쁜 펀드는 관련 시장상황이나 전망, 운용사의 문제점 등을 살펴 갈아탈 지를 결정해야 한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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