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업계가 2002년 '카드대란'이 남긴 오명과 부실을 털어내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카드업계가 건전한 소비문화의 첨병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방안 및 과제, 금융당국의 협조사항 등을 시리즈를 통해 분석한다.
# 2002년에는 누구나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소득이 없거나 신용상태가 나빠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고등학생을 붙들어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장려금조로 현금까지 나눠줬다.
그러나 '신용카드 1억만 장 시대'는 허상이었다. 카드사들이 무분별하게 키운 풍선은 그 해 말 결국 터지고 말았다. 업계 전체 누적적자 11조원 대, 신용불량자 및 파탄 가정 급증과 자살…. 한마디로 악몽이자 대란이었다.
# 최근 유명 방송작가 A씨는 신용카드 발급을 거절 당했다. 프리랜서라 고정수입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신청자 중 실제 카드를 발급 받는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연체정보 등 신용과 소득 및 재산을 꼼꼼히 살피는 카드사의 심사기준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카드업계의 수익구조를 드러내는 세전 순이익률은 2003~2005년 마이너스 늪에 빠져있다 지난해 5.8%로 솟아올랐다.
카드업계가 2002년의 '악몽'을 딛고 부활하고 있다. 무리하게 외형 확대에 나서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새로운 캐시카우(Cash Cowㆍ대규모 현금 수익원)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 자체 수익성을 넘어 소비성향과 생활습관 등 고객의 모든 것을 담은 회원정보의 보고(寶庫)는 신규 수익원 창출의 기반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카드사업이 천덕꾸러기에서 금융의 꽃으로 부각되는 만큼 경쟁은 필연적이다. 은행마다 카드 역량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고, 카드대란의 위기를 정면 돌파한 전업계 카드사도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카드업계의 재편은 통합 신한카드(신한+LG)의 출범과 삼성카드의 상장 등으로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내부전열을 가다듬으면서 경쟁무기도 건전해졌다. 카드대란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겪은 터라 예전의 물량공세 대신 기발한 부가서비스와 다자간 제휴 등 아이디어 경쟁이 돋보인다. 선불(기프트)카드, 직불카드 도입 등 건전한 소비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실제 카드사를 부실로, 이용자를 연체로 내몰았던 현금서비스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신용카드 수익의 양대 축인 신용판매(일시불+할부)와 현금서비스 비중이 2003년엔 비슷했지만, 신용판매가 꾸준히 늘면서 올해 3월말 기준 신용판매 비중이 78%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카드사가 신용경색 등의 외부 리스크를 견디는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외풍은 아직도 남아있다. 다음달부터 가맹점 수수료율을 인하해야 하는데다, 이미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에서 새 수익원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카드업계가 성장을 하기 위해선 외부환경 변화와 당국의 협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여신금융협회 김민기 팀장은 "여전히 카드를 받지 않는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단속, 국세 납부 등 카드 결제 영역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며 "영업관련 규제는 최소화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국내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이제 막 신용카드가 보급되는 중국 등으로의 해외 진출이나 미국처럼 인수합병(M&A)을 통한 재편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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