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이 30일로 D-50을 맞았지만, 한나라당은 아직 대선후보 경선 중이다.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인사들과 박근혜 전 대표쪽에 섰던 사람들의 간극이 여전함을 이르는 말이다. 갈수록 불신과 불만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의원, 사무처 당직자, 당원, 지지자들의 사이가 냉랭하기는 매한가지다.
최근 한나라당 영남 지역 의원 모임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이 후보측 핵심 인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박 전 대표측 핵심 의원이 자리를 피했다. 보기 싫다는 뜻이었다. 이 후보측 인사가 한마디 내뱉었다. “그 인간은 경선 지면 정치 그만 두겠다고 해왔으니 이제 그만 둬야지.”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영남 시당 모임에선 친 이명박 대 친 박근혜 인사간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왜 승복한다고 해놓고 돕지 않느냐”“아쉬우니까 화합 운운 하느냐”는 말싸움, 주먹싸움 끝에 술판은 아수라장이 됐다.
친박 의원들이 많은 상임위와 친이 의원들이 다수인 상임위는 국정감사 분위기가 다르다. 재경위와 정무위가 대표적이다. BBK등 민감한 사안이 똑같이 도마에 오르지만 친이 의원들이 많은 정무위는 뜨겁고, 그 반대인 재경위는 조용하다.
이 후보측은 “친박 의원들이 여당의 공세를 막을 생각은 않고 팔장만 끼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감사 도중 기자들에게 “범 여권의 주장이 맞는 말”이라고 귀띔한 친박 의원도 있다.
박 전 대표측은 인사(人事) 불만이 굉장하다. 한나라당 정책위 사무실이 몰려 있는 국회 의원회관 8층을 친박 인사들은 ‘관타나모 수용소’(미국의 아랍 테러리스트 혐의자 수용소)라고 부른다. 경선 이후 상당수 친박 성향 사무처 당직자들을 비교적 한직(閑職)인 정책위로 발령 내는 바람에 그곳엔 친박 인사들이 많다.
선대위에 참여한 박 전 대표측 인사들도 찬밥 대우를 받고 있다며 앙앙불락이다. 일부 지역 선대위의 경우 친박, 친이 인사가 함께 하는 형식적 회의와 친이 인사만 머리를 맞대는 실질적 회의가 따로 있다고 한다.
한 친박 인사는 “이 후보측이 중요한 정보는 공유하려 하지 않고, 곁가지 일만 시킨다”며 “한직 몇 자리 주고 생색만 냈다”고 말했다. 이게 박 전 대표의 “나를 도운 게 죄냐” “끝까지 살아 남아라”는 발언의 배경이다.
양측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 후보는 26일 박정희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화합 제스처 였다. 그런데 화합은커녕 서로 화만 돋웠다. 박 전 대표측은 “일방적으로 찾아와 쇼만하고 유족도 안보고 가는 예의가 어디 있느냐”고 비판했고, 이 후보측은 “일정이 급하게 결정 돼 상의 못한 것인데 왜 시비냐”고 맞받는다.
결국 29일 아침엔 지도부 간 고성이 터졌다. 이 후보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전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후보를 인정하지 않는 당내 세력이 있고, 이들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강재섭 대표는 “당 단합을 저해하는 작은 언사라도 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경선이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경선 하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맞받았다. 서류가 날아다니고 탁자 치는 소리가 회의장 바깥까지 들렸다.
이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지만, 당을 들여다보면 모래알이다. 박 전 대표측은 “자기들끼리도 충분히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고, 이 후보측은 “진심으로 승복하고 화합할 마음이 없는 데 우리 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따진다. 이긴 자의 책임인가, 진 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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