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국제유가가 90달러를 돌파하면서 배럴 당 유가 100달러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쯤 되면 ‘3차 오일쇼크’라 할 만 하다.하지만 기름값이 오르는 것에서부터 파급영향까지, 모든 면에서 과거 오일 쇼크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경제구조가 바뀐 탓인데, 골자는 세 가지다.
①몇년만에 5배…끝없는 급등 왜?
중국 변수·투기자본·달러 약세로 시장구조 변화
최근 국제 원유시장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돌출하고 있다. 우선 겨울철을 맞아 난방용 원유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터키의 이라크 국경지대 군사작전과 미국의 대 이란 경제 제재안 발표 등 중동지역 정세가 불안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유가가 90달러를 넘어 100달러로 치닫는 것은 너무 심하다. 배럴당 20~30달러대였던 유가가 불과 몇 년만에 4~5배나 급등했다는 것은 국제원유시장구조에 뭔가 큰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과거 오일쇼크 때와 달라진 유가폭등의 중대변수로 ▦중국 ▦투기자본 ▦달러약세 등 3가지를 꼽는다. 중국변수란 세계의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중국이 막대한 개발수요를 감당키 위해 세계 원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을 뜻한다.
투기자본 요인은 2000년대이후 급격히 늘어난 수많은 펀드 자본들이 투자대상 차원에서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 과거 오일쇼크기엔 없던 금융자본이 원유시장에 개입하면서, 실수요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기름값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달러약세는 산유국들의 실질수입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원유시장의 결제통화는 달러이므로 달러화 약세는 산유국들의 실질수입감소를 의미한다. 산유국들로선 달러화 약세분 만큼 원유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②값 올라도 수요는 왜 줄지않나
이젠 생필품처럼 돼…가격탄력성 현저히 줄어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야 한다. 경제학의 ABC나 다름없는 얘기다. 국내 휘발유값이 리터당 1,600원을 넘었는데도 기름은 여전히 잘 팔린다. 이른바 ‘가격탄력성(가격에 따라 수요가 변하는 폭)’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1,2차 오일쇼크에 비해 지금 석유는 훨씬 ‘생필품’이 되어 있다. 값이 오른다고 쌀을 안 살수 없듯이, 고유가라고 해서 기름을 안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높은 세금을 매김으로써 기름수요를 억제한다’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거부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실질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최근 유가는 여전히 1ㆍ2차 석유파동에 비해 낮은 수준이란 지적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다른 물가가 뛰고 소득이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배럴 당 90달러의 현 유가는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이란 얘기다. 돌려말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90달러 유가면, 과거 1만달러 때의 45달러 정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③유가 뛰는데 물가는 왜 안뛰나
원·달러 환율 크게 떨어져 원유 수입가격 흡수
유가는 모든 제품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교통요금이나 전기요금 같은 유가와 직결된 공공요금은 말할 것도 없고, 공산품과 서비스요금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농산물까지도 농기구를 돌리려면 기름과 전기를 써야 하기 때문에 고유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원유가격이 달러 당 80달러에 육박했던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3% 증가에 그쳤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환율. 원ㆍ달러환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원유수입가격을 흡수해주고 있는 것이다. 원화강세가 수출엔 치명적이지만, 적어도 요즘 같은 고유가상황에선 그나마 효자노릇을 하는 셈이다.
경쟁과 개방 효과도 크다. 시장경쟁이 치열하고, 값싼 수입품들이 몰려 들어오면서 국내물가는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고유가든 뭐든, 개방과 경쟁체제에선 과거 같은 인플레경제는 오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의 유가급등이 부담스런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산업구조가 바뀐 만큼) 과거처럼 세계경제에 급격한 침체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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